홍콩의 진풍경.

지하철을 타보면 적어도 승객 너댓명은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소곤소곤
얘기를 하고 있다.

지상의 거리로 올라와도 핸드폰 통화중인 사람 여러명이 한 시야에 들어
온다.

홍콩은 가위 핸드폰 천국이다.

우리도 서서히 홍콩을 닮아 간다.

아니 이미 핸드폰 수다에서 홍콩을 앞섰는지도 모른다.

한국과 홍콩의 차이는 홍콩사람들은 지하철을 타고, 또는 길을 걸으면서
전화를 하지만 많은 한국사람들은 운전을 하면서 전화를 한다.

가뜩이나 인권이 차권에 밀리는 것 같은 나라에서 한손으론 운전, 한손으로
전화수다를 떨고 있으니 교통사고 위험이 높지 않을 수 없다.

며칠전 우리가 사는 근처 G백화점 앞에서 두 대의 차가 정면 충돌을 하였다.

차안에서 황급히 내린 두 운전자들은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다가 서로의
차선을 침범했다.

찌그러진 차 2대를 방치해 놓은채 그들은 일제히 핸드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아마도 현재상황에 대한 보고인 듯 싶은데..

삽시간에 교통은 마비되고 세일까지 겹친 백화점 앞에는 엉킨차와 사람들로
수라장이 되었다.

드디어 손대신 핸드폰으로 삿대질을 해대는 사고자들을 보는 구경꾼들의
표정이 참으로 남의 일이 아니라는 듯 진지하다.

운전에 서툰 여성들이 운전중에 전화수다 떠는걸 보면 식은땀이 난다.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퇴근길에 집가까이 와서 아내에게 핸드폰을 걸어 "여보, 나 집 앞이야"하고
신고를 한다.

5분이나 10분후에 만날 사람에게까지 전화를 하니 전화 회사만 살판났다.

전화수다는 우리에게서 생각할 시간을 빼앗는다.

사색이 없는 생활이 윤택할 수가 없다.

모임이 있으면 노래 불러야지, 우리에겐 정말 생각할 시간이 없다.

운전중의 전화수다는 기계(자동차) 무서운 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몇십분의 1초 차이로 자동차는 살인적인 흉기로 돌변한다.

생각을 모아야 국난을 이긴다.

노래 좀 덜부르고 운전중 수다 좀 줄여 그 시간에 자신을 돌아보는 지혜가
아쉽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