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성중공업은 자금이 견실한 우량기업으로 손꼽힌다.

이회사가 생산하는 콘크리트 펌프카는 현대정공을 통해 OEM으로 전량
수출된다.

지난 92년 국산화에 성공한 유압브레이커는 없어서 못팔 정도다.

매출액도 지난해 60억원 매출에 3백만달러 수출, 올해 1백30억원에
6백만달러를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사상 최악의 수출금융경색은 이회사에도 예외없이 몰아치고 있다.

우량수출기업이 겪는 수출자금조달 애로를 현장밀착취재로 짚어본다.

한성재 대리(36.자금담당)는 16일 평소보다 1시간 이른 오전 7시30분에
인천 고잔동 회사로 출근했다.

캐비닛을 열자 미국과 일본에서 발주한 브레이커 LC 60만달러어치 서류가
수북이 쏟아진다.

주거래처인 S은행에 다이얼을 돌린다.

"어제부터 환율이 안정되는 추센데 오늘은 좀 해주시죠".

"BIS(자기자본비율)를 맞추라고 위(본점)에서 어떻게 난린지.

어쨌든 1월로 넘어가면 그때 봅시다"

한대리는 며칠전 부거래은행마저 지점에서 수출신용장 네고가 아예
불가능하도록 단말기를 조작해 놓은 사실을 상기하며 커피를 들이켠다.

협성중공업의 LC 무역금융은 지난 8일부터 일절 중단됐다.

DA DP는 물론이고 일람불도 어렵다.

IMF협약이전 LC를 받으면 80%가 현금으로 나오고 선적서류를 제출하면
잔금을 내주던 호시절은 이제 끝났다.

무조건 수입바이어가 결제할때까지 버텨야 한다.

한대리는 자금계획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본다.

협성중공업 발행어음에 대한 교환자금 5억원, 인건비와 관리비등 운영비
4억원을 포함해 한달 9억원을 지출해야 한다.

이러려면 하루 3억원을 언제라도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성을 갖춰야 하는데
무역금융이 결딴났으니까 출장비 접대비등 소모성 경비를 무조건 없애야
한다는 답이 나온다.

오전 10시께 개인담보를 들고 다른 은행에 달려갔던 최해성 사장과 김직한
상무가 들어온다.

표정이 밝지 않은걸로 봐서 뾰족한 대답을 못들은 것 같다.

11시20분, "이미 네고가 끝난 LC에 대해서도 연말추심을 위해 22일까지
완결하라"는 거래은행의 독촉전화를 받은뒤 국내어음을 들고 회사를 나서는
한대리는 오늘도 점심을 건너뛸게 뻔하다.

X X X

"오늘(17일)은 어제 못한 어음할인을 꼭 해내야 한다.

이럴때 일 잘하라고 회사에서 자리를 준게 아닌가"

한대리는 출근하자마자 어제처럼 상업은행 한일은행 조흥은행 기업은행등
은행마다 모조리 어음할인 여부를 묻는 전화를 해댄다.

협성중공업이 보유한 어음은 초우량으로 치는 현대정공 발행물.

겨우 한군데 은행에서 할인이 가능하다는 대답이지만 할인율이 25%란다.

법정 할인한도가 40%로 올라간 상황에서 이것도 고맙지만 도저히 투자수익
계산이 맞지 않는다.

어제보다 더 일찍 출근한 사장과 상무도 학교동문과 친척등 금융권과
한줄 걸친 사람마다 부탁한다고 전화통에 매달려 있다.

보기 민망한 나머지 한대리는 2금융권에 무작정 연락해 봤다.

돌아오는 대답은 35% 할인조건을 수용하면 받아 주겠다는것.

"그전 같으면 현대정공 어음을 할인해 가라고 은행에서 먼저 연락올
정도였는데."

열흘단위로 받을 어음 3억~4억원은 쌓여 가는데 할인실적은 예전의
3분의1도 안된다.

회사를 나선 한대리는 보험증권을 통해 어음할인이라도 받아보려고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보 지점을 방문했지만 헛수고로 끝났다.

오후 3시께 갑자기 허리춤에서 삐삐가 울려댄다.

국민은행으로 뛰라는 전갈이다.

마침내 3억원의 어음을 12.5%에 할인하는데 성공했다.

요즘같은 때 이같은 할인은 큰 횡재다.

"20억원어치의 브레이커 재고로 밤 12시까지 수출납기를 맞추고 있습니다.

재고가 바닥나기 전에 자금사정이 풀려야 할텐데 걱정이에요.

그래도 다른 회사는 우리보고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합디다"

< 인천=김희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