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수입 2억3천만원, 지출 3억1천만원 빚 8천만원.

지난 15대 총선에서 처음으로 금뱃지를 단 한 야당의원의 수지계산서이다.

초선인데다 비교적 검소(?)하게 생활하려고 노력했던 모의원이 당선후
1년간 8천만원의 빚을 지게된 사연은 이렇다.

당선의 기쁨은 잠시.

지지자들은 물론 여러모로 선거를 위해 뛰었던 사람들을 무시할 수 없어
사례를 하고 각종 현수막 값까지 5개월간 2억3천만원이 들었다.

법정비용 8천5백만원으로는 턱도 없는 금액이었다.

의원이 된 후 사무실 운영비 등 월간 고정지출비만 해도 1천5백만원은
거뜬히 든다.

상근요원 인건비 5백만원, 경조사비 6백만원, 순수 지구당 유지비 1백만원,
가계생활비 및 부인활동비 3백만원 등등.

월 평균 6백만원에 불과한 세비로는 턱없이 모자라 국회에서 5천만원을
빌렸고 사채도 3천만원을 끌어썼다.

의원중에는 그래도 지출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이 의원은 "지금처럼 돈에
시달리다보면 뒷 탈만 없으면 큰 돈도 받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털어놓는다.

나라 전체가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선 요즘이지만 어느 부문보다도
"거품"이 심한 곳이 바로 "정치"무대라는 걸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국회의원중 소형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한나라당의 김문수의원과 야당의
몇의원 등 수명에 불과하다.

대부분 배기량 3천cc이상의 최고급 승용차를 굴린다.

새모델의 대형승용차가 나올 때마다 국회의원들의 상당수는 몇년 타지도
않은 차를 새차로 바꿔버린다.

한 야당의원의 기사는 얼마전부터 판매되기 시작한 고급 승용차 체어맨의
출고 1호를 "어른"께서 구입하셨다고 자랑스레 말한다.

국회의원들의 특권의식과 씀씀이는 유별나다.

매사 최고급이어야 직성이 풀리고 그래야 품위유지가 된다고 믿는다.

술집도 최고급이고 공항을 이용할 때도 귀빈실을 써야 하며 항공기는 꼭
일등석만을 고집한다.

그뿐이 아니다.

한번에 5만~10만원씩 내는 경조비가 일주일에 수십군데씩 나간다.

한달 평균 줄잡아 5백만~6백만원은 족히 잡아야 한다.

국회의원 세비로는 경조사비만 내도 빠듯하다.

거기에다 지구당 운영비, 개인 사무실 운영비 등도 한달에 족히 1천만원
안팎 들어간다.

이같은 씀씀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후원회모금 세비등의 수입으로는
그야말로 "밑빠진 독에 물붓기"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정경유착이 생기고 "검은돈"이 활개칠 수 있는 토양이 생기기
마련이다.

정치권의 거품은 물론 정치권만의 책임은 아니다.

정치권에 기대어 땅짚고 헤엄치기식으로 기업을 키우려는 천민자본가들과
"손벌리기"에 익숙해져 있는 국민들도 정치권 "거품"생산의 조력자들이다.

그러나 정치권 스스로 이같은 껍질을 벗지 못하는 이상 한국정치는 물론
한국경제도 2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21세기 한국의 장래는 정치권을 감싸고 있는 두꺼운 거품 제거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 특별취재단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