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이치증권의 노자와사장이 지난 17일 도쿄 가스미카세키에 있는
정부종합청사내 증권거래감시위원회를 느닷없이 방문했다.

훗카이도다쿠쇼쿠은행의 파산으로 청사내 분위기가 뒤숭숭하기 짝이 없는
때였다.

"실은..."

노자와사장은 한참이나 망썰이다가 말을 꺼냈다.

"장부의 채무를 2천억엔이상이나 갖고 있습니다..."

연결부채 6조7천엔이라는 전후최대규모의 야마이치 파산스토리는 이렇게
시작됐다.

메이지 30년에 창업, 올해로 1백년을 맞은 증권업계의 "시니세" 야마이치의
붕괴를 알리는 비상사태가 발생한 것은 19일.

정부측에 비히를 털어 놓은지 이틀만이었다.

이날 증시에서는 ''야마이치가 후지은행에 긴급자금지원을 요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가가 한때 액면가 50엔에 거의 육박하는 58엔으로까지
떨어졌다.

이로인해 단기금융시장에서 당좌자금을 조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
버렸다.

이 와중에서 21일 저녁에 터져나온 미국무디즈사의 야마이치발행사채에
대한 "투자부적격" 판정은 결정타가 됐다.

야마아치의 신용도는 무디즈사의 평가처럼 엉망이었다.

주식가격의 폭락, 옹회꾼에 대한 불법이익제공사건으로 인한 고객이탈 등도
신용에 영향을 미치기는 했다.

그러나 근본원인은 바로 불법 불량채권 때문이었다.

대장성은 22일 "야마이치가 2천억엔이상의 장부외채무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주식 금융시장 관계자들 사이에서 수년전부터 소문으로 퍼져온 불법채무의
존재를 공식 확인해준 것이다.

거래기업의 유가증권평가손을 표면하시키지 않는 불법행위를 해가면서까지
수년동안 법인영업을 해왔음이 드러난 셈이다.

야마이치는 버붙기에 계열사에 대한 자금지원 보증으로 떠안은 불량채권을
포함 무려 6조엔이상(연걸기준)에 이르는 부채외에 장부외채무까지 시인
하면서 재건을 단념해 버린 것이다.

훗카이도다쿠쇼쿠은행의 도산도 불량채권에 따른 것이었다.

다쿠쇼쿠은행은 9천3백49엔(3월말기준)에 이르는 불량채권으로 신용이
불안해지면서 예금이 대거로 빠져 나갔다.

주가도 동시에 폭락을 계속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경영재견을 위해 추진된 1천5백억엔의 증자계획이 무산
되면서 경영권을 호쿠요은행에 넘겨버리고 말았다.

올초부터 진행돼온 훗카이은행과의 합병교섭이 결렬된 것도 결국 불량채권
때문이었다.

훗카이도측은 다쿠쇼쿠가 내놓은 불량채권규모에 의문을 던지면서 합병
계획을 포기해 버렸다.

산요증권도 버블기에 이뤄진 계열비은행회사의 대한 과도한 채무보증으로
발생한 3천7백36억엔의 불량채권에다 주식시장 침체까지 겹치면서 법정관리
를 신청하고 말았다.

11월들어 잇따라 터진 3건의 대형파산은 불량채권으로 인한 신용불안으로
인한 것이었다.

대장성주도의 "호송선단"식 행정에 흠뻑 빠져온 금융계가 불량채권이라는
버블기의 "부의 유산"으로 인해 힘없이 쓰러진 것이다.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금융기관은 당국이 어떠한 지원을 하더라도
살아남을 수 없음을 보여준 사례다.

도시은행들은 6천5백억엔에서 최대 1조7천8백억엔에 이르는 불량채권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저금리정책의 장기화에서도 불구하고 은행경영이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은행들은 내년 4월의 조기시정조치도입에 대비, 자기자본비율제고를 위해
대출을 오히려 줄이고 있다.

연쇄도산의 근원인 불량채권문제를 해결는데 도움을 주기는 커녕 금융불안
을 오히려 가중시키는 역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불량채권을 숨기기 위한 융자와 불법채무가 지금처럼
계속 늘어난다면 일본금융산업의 미래는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것 같다.

< 도쿄=김경식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