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관 < 인천대 교수 >

우리나라상품이 국제경쟁력을 상실했다는 것은 오래된 얘기다.

이에따라 무역적자가 계속 늘어나 올해에도 2백억달러가 넘으리라고 한다.

그동안 경제살리기로 모아졌던 공론마저 "대선"과 "한보"문제 등에 휘말려
뒷전으로 사라졌다.

늦기전에 심기일전하여 닥쳐오는 경제위기의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때다.

우리나라의 무역적자가 급증하는 가장 큰 원인은 선진공업국, 특히 일본
미국및 유럽연합과의 무역역조가 커져만 가는데 있다.

이들 나라와의 무역역조는 지난해에 무려 3백20억달러가 넘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주종수출품인 중화학공업제품, 그중에서도 주로 기계류가
이들 선진국제품에 대한 경쟁력을 상실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나라의 지상과제는 중화학공업제품 그자체의 고품질
고성능 고부가가치화 문제로 집약된다.

예컨대 자동차를 비롯한 모든 기계에 빠짐없이 쓰이고 핵심적 역할을 하는
"톱니바퀴"의 가공정밀도가 낮고 치수의 정확성이 떨어지면 기계는 쉬닳고
제구실을 못하게 되어 상품으로서 경쟁력을 잃게 마련이다.

또한 이들 공산품의 생산은 우선 성실하고 정확하게 길이, 무게 및 재료의
성분등 기본적 사항을 측정하는 기초적 일로부터 시작이된다.

이들 수만가지의 공산제품과 부품및 재료들의 생산은 전국에 분산되어있는
많은 공장과 수백만의 일손에 의해 만들어진다.

때문에 이 모든 제품의 균질성과 품질등을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 시키기
위해서 국가는 "미터"단위계를 비롯한 온갖 정밀측정 표준과 표준데이터
정보및 표준과학기술등 "사회기반기술"을 제도적으로 전국에 보급하고 그를
수준높게 준수하도록 주기적으로 검검하며, 또한 고도로 발전시키는 "국가
표준제도"를 확립운영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상품이 국제경쟁력을 상실하게된 첫째원인은
우리나라의 국가표준제도가 낙후되고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80년대에 일본의 우수 기술제품에 밀려 국내외시장에서 고전을 면치못하던
미국은 88년에 "종합무역및 기술경쟁력 강화법"을 제정하여 최우선적으로
"국가표준제도"를 개혁하고 사회기반기술을 확충하여 온국민과 산업체의
"생산성과 제품의 질 향상"에 주력함으로써 오늘날 강력한 경쟁력을
회복하여 세계의 무역을 주도하고 있다.

"벤츠"자동차로 대표되는 독일 제품이 오랜 세계적 정평을 누리는 것도
1백년이 넘는 긴 전통을 가진 독일의 "국가표준제도"가 거듭된 세계대전
패배나 되풀이된 국체변경에도 불구하고 온독일제품의 질과 신뢰성 향상을
시종일관게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다행히도 87년에 여야합의와 국민투표를 거쳐 제정한 현행
민주헌법 제127조 2항에 "국가는 국가표준제도를 확립한다"는 세계최초의
표준제도 조항을 명문화하는데 성공했다.

다사다난한 우리나라에서 거듭되는 정권교체와 사회적 혼란을 초월하여
국가경쟁력을 일관성있게 강화함은 물론 더 나아가 21세기의 첨단산업시대를
선도하기위한 새로운 제도의 창설이 필요하다는 건의가 반영된 것이었다.

국가 표준제도는 온 국민의 각양다색한 생산활동은 물론 일상생활
교통통신 건설 안전 환경 과학기술과 자주국방 분야 등을 유기적으로
연계발전시켜 총체적으로 국력을 강화하는 산업문명의 기본제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국가표준제도"를 헌법의 취지와 국제적 추세에
따라 범국가적 기본제도로 발전시키지 않고, 오히려 정반대로 90년대에
들어 당치도않은 "중소기업청"의 부수적 업무로 격하시켜 국가표준제도의
선진화를 저해시킴으로 우리나라 문.물의 신뢰도 상실을 자초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자칫 산업체제 혁신의 시기를 놓쳐 3등국가로 추락될 위기에
처해있다.

차제에 여야는 다시한번 이 문제를 중시하여 "국가표준기본법"을
제정함으로써 온국민의 정성과 손길이 우리나라 문.물의 국제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도록 조속히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경제위기의 극복을 위한 온국민의 제도적 "동참대"가 마련될 때 비로소
우리나라는 선진국들과의 힘겨운 무한경쟁을 성공적으로 이겨나가게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