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소행인가 아니면 개인 문제로 인한 일반형사사건인가

이한영씨 피격사건을 수사중인 경기지방경찰청 수사본부(본부장 김덕순
치안감)가 갑자기 수사 방향을 바꾼 듯한 발표를 해 사건의 성격을 둘러싸고
의문이 일고 있다.

김충남 분당경찰서장은 17일 오후 "이번 사건은 대공사건의 용의점이
많지만 단순 형사사건일 가능성도 높다고 보고 수사를 여러 각도로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수사방향은 경찰이 사건 직후 <>현장에서 북한 간첩들이 주로 쓰는
권총탄피가 발견됐고 <>북한이 96년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과 최근 북한
노동당 황장엽비서 망명 요청 이후 계속 보복을 다짐해온 점 등을 들어
간첩의 소행으로 단정했던 점에 비춰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이와 관련, 우선 상정할 수 있는 것은 경찰의 당초 발표대로 북한
간첩들이 벌인 경고성 테러일 가능성이다.

이는 범인들이 <>범행에 총기를 사용했고 <>이씨가 북한에서 귀순한 특수
신분이라는 점 <>최근 북한은 급증하는 탈북자들을 막기 위한 경고성 조치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 등에 의해 뒷받침된다.

즉 우리의 치안상황에 비춰 일반인이 총기를 소지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기 때문에 남파간첩 이외의 범인을 지목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 이씨가 김정일의 가까운 친척이라는 점과 북한이 최근 급증하는 고위
인사 및 일반인들의 탈북을 막기 위한 조치가 필요했다는 점에서 이씨를
표적으로 삼았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밖에 현장에서 수거된 권총 탄환도 지난 95년 10월 부여 간첩사건때
노획된 총탄과 같은 종류인 체코제 실탄이라는 점도 간첩들의 범행일
가능성을 높여준다.

그러나 이씨의 사생활을 둘러싼 원한 관계로 인한 일반 형사사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범행이 치밀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범인들은 이씨를 살해하기 위해 권총을 사용했으나 총탄 1발은 이씨가
입고있던 점퍼를 관통하지 못한 채 옷의 안감과 겉감 가운데서 발견됐다.

이는 총기에 대한 평소 관리상태가 매우 불량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테러전문가의 소행으로 보기가 어려운 대목이다.

이씨의 사생활이 복잡했다는 점도 단순 형사사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씨는 지난 82년 망명 이후 각종 사업실패로 구속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었으며 최근에는 일정한 주거없이 이곳 저곳을 떠돈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또 국가의 지원이 충분했던 귀순 초기의 생활습관에 젖어 여러
사람의 돈을 빌렸으며 최근에는 유창한 러시아어 실력을 이용, 우리나라
취업 러시아인들의 안내역도 한 것으로 경찰조사 결과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주변인들로부터 깊은 원한이나 미움을 샀을 개연성도
있기 때문에 이씨 피격은 간첩의 소행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다.

이렇듯 이번 사건의 범인을 둘러싼 추정에는 간첩 소행론과 개인생활을
둘러싼 단순 형사사건론 등으로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일반 형사사건이라는 견해의 경우 사건의 핵심인 총기사용 부분을
설명할 수 없다는 한계 등으로 커다란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는 것이 경찰
주변의 공통적 시각이다.

< 김광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