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는 사람 사이의 정이나 기분까지도 다 이해할 수 있는 진짜 한국
인이 되고 싶어요"

현재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마케팅을 전공하는 야심찬 경영학도인
피 제이 로저스씨(28).

하지만 그는 단순히 낯선 이국땅으로 유학온 사람만은 아니다.

마케팅이라면 오히려 본토 미국에서 충분히 배울 수 있을 터이다.

그가 욕심을 내는 분야는 한국을 주무대로 세계를 연결하는 국제 경영컨설
턴트.

무한한 성장가능성을 담고 있는 곳이라 스스로 평가한 이 땅을 발판삼아
전세계로 날아가겠다는 희망의 소유자다.

올해 목표를 "한국을 속속들이 이해하는 것"으로 잡은 것도 이래서다.

주무대가 될 이 땅의 관습 문화에서 개인생활의 자질구레한 면까지 그에겐
관심대상이다.

한국에 대한 이같은 열정탓에 그는 친구들 사이엔 "김미남"이란 한국식
이름으로도 불린다.

"김치를 잘 먹는 미국 남자"라는 뜻이다.

번데기만 빼고 못먹는 한국음식이 없을 정도다.

시간이 나면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는 것도 몸에 뱄다.

한국을 알기 위해선 직접 몸으로 느끼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는 걸 그동안
경험으로 배운 때문이다.

그가 이 땅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88년8월.

선교사라는 십자가를 메고 "동방의 작은 등불"을 방문해 22개월동안 온
열정을 쏟았다.

"복음"을 "우리 말"로 전달하기 위해 그가 기울인 노력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

"한국에 있는 동안 영어를 쓰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고향으로 편지쓴 것을 제외하면 말이죠"

이같이 "지독하게" 한국어를 공부한 덕에 지금은 주변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알맞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아직도 멀었다는게 그의 겸손.

요즘도 수첩엔 "꼼꼼하다" "깔끔하다" 같은 우리 말이 빽빽이 적혀있다.

틈나는대로 어휘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가 도대체 한국에 푹 빠진 이유는 뭘까.

가장 먼저 꼽는게 사람사이의 정.

"한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라는 한국고유의 인간관계에 푹 빠졌다는 게
첫번째 설명이다.

두번째로 꼽는 것은 가능성.

무한한 성장가능성이 있는 곳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해보겠다는 욕심이다.

그는 선교사 시절엔 전혀보지 못했던 연인들의 자연스러운 키스모습이
거리에서도 벌어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변화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말이다.

게다가 "경제성장속도에 비해 한국인들이 돈을 함부로 쓰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는 외국인답지 않은 우려도 한다.

요즘은 시간이 날때 대학시절 알게된 한국인 선배가 경영하는 EWC(이스트
웨스트컨설팅)에 나가 실습을 겸해 일을 돕는다.

앞으로 한국과 영어권세계를 연결할 무기를 하나씩 가다듬고 있는 것이다.

새해의 첫 출발인 1월 낯선 이국 땅에서 자신의 길을 열어가는 이방인아닌
이방인이 펼치는 당찬 꿈이다.

< 글 김준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