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그룹의 톰슨 멀티미디어 인수는 이 회사가 속해 있는 톰슨그룹
민영화계획 자체를 일시 중단한다는 프랑스정부발표에 따라 사실상 좌절됐다.

대우그룹은 인수협상을 계속 추진한다는 방침을 거듭 분명히 하고 있으나,
프랑스정부의 결정이 "프랑스의 자존심"을 내세우며 대우 인수를 반대해온
국내여론에 따른 것이라는 풀이이고 보면 민영화절차가 재개되더라도 다시
대우에 기회가 주어질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지난 10월17일 프랑스정부가 톰슨 멀티미디어 인수업체로
대우전자를 선정했다는 발표로부터 지난 4일 이를 뒤엎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번 일이 대우그룹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만은 아니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표현대로 그것은 명백한 "투자자에 대한 차별"이다.

국경없는 경제시대, 외국인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하나같이
혈안이 돼있는 시대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다.

프랑스정부가 당초 인수자를 대우로 결정한 것은 폐업에 직면했던 로렌
지방 컬러TV공장을 인수해 성공적으로 되살린 대우의 실적을 감안한 것이고,
프랑스 국내업체중 인수희망자가 없었는데다 대우측이 5,000명의 신규고용과
15억달러의 투자를 약속하는 등 좋은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한국업체인 대우가 아니라 미국 또는 일본 업체였더라도 프랑스 정부가
대안도 없이 "민영화절차 일시중단"이라는 납득할 수 없는 형식으로 기득권
업체를 배제했을 것인지, 우리는 생각해봐야 한다.

프랑스정부의 이번 조치는 그 경위가 어떻든 명백한 "차별"이고,
국수주의적 행위다.

더욱이 지극히 우호적이었던 프랑스에 대한 우리나라의 경제협력자세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프랑스가 중심이 돼 개발한 에어버스가 아직 국제 항공업계에서
신뢰도를 얻지 못하고 있던 70년대에 이를 구입해준 최초의 유럽지역외
국가이고, 원자력발전소와 고속철도 등 대형 프로젝트를 발주해준 선례가
있다.

바로 그런 점을 감안하면 이번 프랑스정부의 조치는 심히 불유쾌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한승수 부총리가 프랑스 대사를 불러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달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대응이다.

정부차원에서 좀더 경위를 알아봐야 할 것이지만 한국기업에 대한
차별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할 경우 보다 강경한 후속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고속전철망 확대에 따른 TGV추가도입 무궁화위성 3,4호기 차세대전투기사업
중형항공기개발 등 가까운 시일안에 현안화할 한국과 프랑스간 경제협력대상
사업들이 이번 톰슨 멀티미디어 때문에 영향을 받는 것은 양국 모두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 아니겠지만, 자존심은 프랑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필요하다면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상사간 상거래도 그래서는 안되거늘 하물며 한 나라의 정부가 외국상사와
약속한 것을 뒤엎는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더욱이 그 과정에서 대우가 "싸구려 제품만 만드는 회사" 등으로 매도되는
등 대외이미지에서 적잖은 타격을 입었고 보면 그 피해는 누가 보상해야
하는가.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