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북한의 나진.선봉지역에선 북한 대외경제협력
위원회가 주관한 투자설명회가 열렸다.

한국 미쓰이물산의 오성국 대표이사 사장은 일본 재계 대표로 이 설명회에
참석했다.

오사장은 "북한측은 한국기업인들이 참가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는
분위기였다"며 "북한도 한국 기업의 참여 없이는 나진.선봉 개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오사장이 3일간 나진.선봉 지역을 둘러보면서 느낀 감상을 두차례에
걸쳐 싣는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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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니이가타항에서 나를 포함한 나진.선봉 방문단이 출발한 건 지난 9월
11일.

우리가 타고 간 배는 2만톤급 "신사쿠라마루호"였다.

일본 J-TV가 주선한 선박이었다.

총 승선인원은 2백49명이었으며 이중 1백44명은 정식으로 투자 설명회에
참석하는 이들이었고 나머지 1백5명은 관광객이었다.

관광객들은 주로 함경도 일대(나진.선봉 인근)를 고향으로 하고 있는
재일교포 실향민들이었다.

재미교포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배에선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약간의 멀미도 있었지만 50년만에 고향땅을 밟는 마당에 쉽게 잠을 못
이루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꼬박 하루 이상 바다를 달려 이윽고 나진항에 도착한게 13일 오전 9시께.

50년이 흘렀지만 고향땅은 별로 변한게 없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옛날 모습 그대로였다.

항구시설도 일제시대때와 별로 달라진 게 없었고 거리모습도 비슷했다.

마치 타임캡슐을 타고 50년전으로 되돌아온 느낌이었다.

고향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던 점은 좋았다.

나진.선봉 투자설명회엔 정식 대표단만 3백80여명이 참가했다.

여기에다 뉴욕타임즈 CNN BBC 중국신화통신 등 취재진까지 포함하면 모두
5백여명이 북적거렸다.

정부 대표단을 보낸 나라는 50명 규모의 중국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일본측 기업인들은 도요엔지니어링 미쓰이물산 등 종합상사 관계자들이
많았고 미국측 교포들도 다수 포함됐다.

나는 일본 미쓰이물산의 대북창구인 싱와물산 고문이자 미쓰이가 출자한
한국미쓰이물산 대표이사 사장 자격으로 참가했다.

날씨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거리의 색깔이나 전체적인 느낌은 어두웠다.

우리가 도착한게 오전이어서 그런지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뭍에 내리니 북한측 안내원들은 일행을 "선봉 회관"이라는 곳으로
안내했다.

선봉시에 있는 공회당 같은 곳이었다.

한꺼번에 5백명에서 6백명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시설이었다.

이곳에서 투자설명회 개막식이 열린다고 안내원은 귀뜸해주었다.

건물은 새로 지어진 것이어서 그런지 깔끔했고 페인트칠도 산뜻하게
돼 있었다.

군데 군데 페인트칠이 덜마른 곳도 눈에 띠었다.

또 중앙에 넓은 홀이 있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집회나 모임을 가질 수
있도록 설계돼 있었다.

어쨌든 준비는 대체로 잘 돼 있는 것 같았다.

안내를 받아 북한측 관계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니 김정우 대외경제협력
추진위원회위원장 등 북한측 관계자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UNDP에서 나온 사람들도 있었고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평양에서
왔다는 북한 고위당국자의 얼굴도 눈에 띄었다.

개막식은 오전 10시에 선봉회관에서 열렸다.

임태덕 대외경제추진위 부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이후 일정은 대부분 임태덕 부위원장이 주관했다.

첫날 개막식이 끝난 직후엔 분야별 투자설명회가 열렸다.

북한측에서 외국기업을 상대로 봉제 광석 수산물 철강 등 부문별로
투자조건 등을 설명하고 개별적으로 투자상담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상당히 짜임새있게 진행을 한 것으로 기억된다.

다음날 오전에는 각국의 사례 발표와 주제 발표가 있었다.

여기서는 도요엔지니어링측이 작성한 팜플렛이 화제가 됐다.

골자는 "나진 선봉지역을 관광단지나 경공업단지로 개발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중화학 공업단지로 육성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중국대표는 현재 50만달러 이상으로 제한된 투자조건을 액수와 상관없이
허용해 달라고 주장했다.

북한측 대외경제협력위원회는 기본적인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준비는
갖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참석자들 대부분은 이같은 설명을 못미더워하는 분위기였고 내가
보기에도 그다지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일본 재계인사들은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게 당연한 것
아니냐. 오히려 지금부터 어떤 계획을 짜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반응이었고
내 생각도 마찬가지다.

기존 그림에 덧칠을 하는 것보다 백지위에 새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낫다고나 할까.

이후 나진항 등 주요 시설에 대한 참관이 있었다.

나진.선봉지역에 있는 승리화학정유공장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이 공장은 지금 가동이 완전히 중단돼 기계에 녹만 쌓여가고 있었다.

승리화학공장이 가동되지 않는 이유는 구소련으로부터 들여오던 원유가
끊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러시아산 원유는 그 물성이 독특해 승리화학공장은 그에 맞게 설계된
공장이다.

그런데 구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산 원유가 들어오지 않으니 소용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설비를 뜯어고칠 돈도 없어 그냥 방치해 두고 있어 이제는
고철덩어리가 돼가고 있었다.

주요회의가 진행된 선봉인민대회장에는 영어와 일어가 동시통역되는 등
시설과 진행요원의 수준이 그런대로 높았다.

그러나 신축한 나진 관광호텔의 경우 객실이 1백여개밖에 되지 않는데다
시설도 한국의 장급 여관 수준정도였던 걸로 기억된다.

한가지 분명한 점은 북한측에선 한국이 투자설명회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상당히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물론 대외경제협력위원회의 생각이다.

또 남한쪽 자본의 참여가 없이는 나진.선봉지구에 대한 실질적인 개발이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둘째날 오후엔 개별 투자면담이 있었고 마지막날엔 투자계약서와 의향서
교환이 있었다.

투자건은 1백만달러에서 수천만달러까지 다양했다.

북한측은 공식적으로 2억7천만달러규모의 투자계약이 이루어졌다고
밝혔으나 실제로는 이에 훨씬 못미칠 것이란 얘기도 있었다.

여기에는 자본주의국가와 사회주의국가간의 가치관이나 개념 차이도
크게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된다.

사업가는 언제 어디서건 확실한 말을 안하는 법이다.

더구나 대규모 투자건의 경우는 "이러저러한 전제가 보장된다면 얼마를
투자하겠다"는 식으로 약속하기 마련인데 북한당국은 전제를 빼고 "얼마
투자"만 발표하다보니 나중에 서로 말이 안맞게 되는 사태도 생기는 것이다.

투자설명회의 진행은 전체적으로 매끄러웠고 그런 점에서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물론 투자설명회의 성공 여부는 최종 투자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지만
진행방식이나 포럼 그자체만 보면 그런대로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매일 일과가 끝난 후엔 만찬회가 열렸다.

첫날에는 나진 시장이 주최했고 둘째날은 임태덕 부위원장, 마지막날은
김정우 위원장이 각각 만찬을 주재했다.

만찬도 사회주의식으로 진행됐다.

예를들면 손님들은 서서 음식을 들게 하고, 주최측은 앉아서 식사를 하는
등 미숙한 진행이 눈에 띄었다.

이것도 문화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셋째날엔 개인적인 용무가 있어 투자설명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개인적인 일이란 다름아닌 50여년만에 헤어진 여동생을 만나는 일이었다.

[[ 나진.선봉 가는 길 ]]

나진 선봉 자유무역지대안의 교통은 자동차가 중심이다.

나진 시내의 도로는 너비가 18~20m로 여유를 갖고 개설되었으며 대부분
포장도로다.

그러나 시외로 나가면 도로폭이 좁고 평탄하지 못한 도로가 대부분이다.

공공교통기관은 없으며 자유무역지대안에서는 자동차와 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 뻬이징~평양 경유로 =도쿄와 베이징 사이는 제트기로 약 4시간 40분.

뻬이징~평양사이는 고려항공이 주 2회, 국제열차가 주 4회 운행된다.

평양에서 나진으로 가는 교통수단은 철도(약 800km. 요금 80원), 자동차가
있다.

<> 뻬이징~연길 경유로 =뻬이징~연길 사이는 제트기로 약 1시간40분
걸린다.

뻬이징~연길은 중국의 민항이 매일 운행한다.

연길에서 나진으로 가려면 일단 도문지역(52km)으로 들어가서 남양교를
건너야 한다.

남양으로부터 두만강을 따라서 새별 홍의 선봉을 경유하는 철도가 있다.

자동차로는 약 4시간이 소요된다.

<> 니이가타~블라디보스토크 경유로 =도쿄 니이가타사이는 고속철도로
약 2시간.

니이가타~블라디보스토크 사이엔 소련의 민항이 주 2회 운항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