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신도시 서현동 시범단지 32평형아파트에 살고 있는 강모씨(42)는
요즘 깊은 시름에 빠져 있다.

전세계약 갱신을 한달여 앞두고 집중인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무려
3,500만원이나 올려달라는 통보를 받은것.

지난 94년 9월 6,000만원에 전세계약을 맺었으나 60% 가까이 오른
셈이다.

강씨는 결국 평수를 줄여 옮기기로 하고 동네 부동산중개업소를
찾았다가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아야 했다.

21~23평형 소형아파트도 연초보다 전세값이 1,000만~2,000만원이
오른 6,500만~7,000만원에 거래되고 있었던 것.

그마나 매물이 귀해 소개비에 웃돈까지 얹어줘야 집을 구할수 있는
실정이었다.

지난 2~3년동안 부동산경기침체와 함께 안정세를 지켰던 아파트
전세값이 요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봄 이사철부터 슬금슬금 오르다가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는 폭등양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전세값상승이 처음에는 수요가 많은 분당신도시를 중심으로한
국지적 현상인것처럼 보였으나 이내 일산 평촌 산본등 다른 신도시로
번지고 지금은 서울과 수도권전반으로 확산되는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전세값폭등은 약간의 시차를 두고 걷잡을수 없는 아파트
매매가 상승을 부추긴 지난 89년상황의 재판을 예고하는것 아니냐는
심각한 우려마저 불러 일으키고 있다.

사실 아파트전세값은 올들어 너무 올랐다.

분당신도시의 경우 수요가 많은 32~33평형 전세값이 연초만 하더라도
6,500만~7,000만원선으로 지난 2~3년동안 별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 봄이사철을 기점으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6월에는
7,800만~8,300만원의 시세를 보이다가 지금은 9,500만원선까지 가파르게
뛰어 올랐다.

신혼부부들이 주로 찾는 22~23평형 소형아파트도 지난 1월 5,500만~
6,000만원에서 6월6,000만~6,500만원으로 올랐다가 지금은 6,500만~
7,500만원의 시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따라 22~33평형 아파트 매매가도 연초보다 1,000만~2,000만원정도
오른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분당의 경우 이제는 신규 물량공급마저 없어 전세값과 매매값이 한차례
더 오를 가능성이 큰것으로 현지 부동산업소관계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일산신도시도 예외가 아니다.

마두동 강촌동아파트 32평형이 연초보다 최고 2,500만원이 오른 6,500만~
7,500만원에, 일산동 후곡현대아파트 23평형이 연초보다 1,500만원이 올라
5,000만~5,500만원선에 전세거래되는 등 신도시 전역이 이미 "전세값
폭등"이라는 태풍권에 들어가 있다.

문제는 전세값 급등현상이 신도시에만 한정된게 아니라는데 있다.

지난 91년이후 주택가격안정권에있던 서울지역에서도 이제 전세값상승이
뚜렷해지고 있고 그 여파가 수도권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소형아파트가 밀집한 서울의 상계동 중계동 월계동일대의 경우 매매가
대비 전세값이 85%선을 웃도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따라 20평형 소형아파트는 전세값에 2,000만~2,500만원만 보태면
아예 집을 살수 있을 정도이다.

서울지역 30평형대 이상 중대형아파트 전세값도 최근들어 강남 강북할
것없이 강세로 반전하고 있다.

강남구 개포동 우성3차아파트 34평형이 1억2,000만~1억3,000만원, 삼성동
상아아파트 48평형이 2억~2억2,000만원으로 연초보다 1,500만~3,000만원
뛰었다.

강서구 등촌동 대림아파트 34평형과 46평형은 연초 9,000만~9,500만원에서
1억3,000만~1억4,000만원으로 올랐다.

일부지역이긴 하지만 전세값상승은 이미 매매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송파구 올림픽선수촌아파트 57평형이 한달사이에 4,000만원이 오른
5억8,000만~6억8,000만원에, 잠원동 한신아파트 25평형은 3,000만원이
오른 1억6,000만~1억7,000만원에 각각 매매거래되고 있다.

부동산전문가들은 "이번 전세값상승은 전세값파동이 매매가폭등으로
이어진 지난 88~89년 상황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80년대말 목동 상계동등에 미분양 아파트가 누적된 상태에서
매매가는 오히려 떨어지는데 반해 전세가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다가
결국 걷잡을수 없는 집값폭등으로 이어졌던 전례에 비춰 지금의 전세값
상승이 매매값 동반상승이라는 악순환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전세값상승이 반드시 매매가급등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부동산경기의 장기침체에 따른 신규공급물량부족이 이번 "전세값사태"를
낳았지만 부동산투기를 막기위한 거미줄같은 규제와 누적된 미분양
아파트가 집값상승을 막는 버팀목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 김태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