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고 볼거리가 풍성하다.

2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96 고래사냥".

소설과 영화로 널리 알려진 최인호씨의 작품을 송승환 (기획) 이윤택
(연출) 김수철 (음악) 서병무 (안무)씨 등 각 방면에서 내로라 하는
사람들이 모여 10억원 가까운 제작비를 들여 만든 대형창작뮤지컬이라는
점에서 제작초기부터 큰 관심을 모은 작품이다.

공연은 연희단거리패 소속단원들이 주축이 된 역동적인 춤, 화려한
조명, 대형세트와 스크린영상을 이용한 스펙터클한 무대전환, 장르의
고정관념을 깨는 파격적인 퍼포먼스와 생동감 넘치는 라이브음악으로
2시간30분동안 화려하게 이어진다.

하지만 "한국적 뮤지컬"의 방향을 제시하겠다는 의욕탓인지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 함으로써 극의 템포 조절이 잘 이뤄지지 않아
관객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

대형스크린을 이용해 영상과 연기자의 연기를 조화시키는 새로운
기법은 기존 뮤지컬에 익숙한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할 만큼 자주
사용됐다.

창작초연초기에 으레 보이는 것이지만 덜 다듬어진 음향과 조명도
아쉽다.

줄거리는 진실과 사랑을 찾아나선 병태 (남경주 분)가 거지 민우
(장두이 분)와 만나 벙어리창녀 춘자 (송채환 분)를 구출, 그의 고향에
이르는 여로를 통해 성장하는 과정으로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인물의 성격과 상황은 90년대에 맞도록 달리 설정됐다.

병태는 소심하고 나약한 모습이 아니라 활달하고 자기표현에 거침없는
젊은이로 그려진다.

80년대 대학가의 암울한 분위기는 대중문화에 길들여진 신세대들의
향락적인 풍경으로 대치된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들이 찾아나선 "고래"로 제시되는 것은 "자기희생에
바탕한 사랑".

원작과 달리 "사랑의 힘"이 춘자의 잃어버린 말을 되찾게 하고 병태
일행을 집요하게 뒤쫓던 깡패들을 감화시켜 춘자를 포기하게 만든다.

병태와 민우는 "삶의 희망과 가치는 진실한 사랑에 있다"고 노래한다.

이처럼 진부한 결론의 직접적 제시는 2시간여동안 무대를 쫓아온
관객을 감동시키기보다는 맥빠지게 한다.

공연은 9월4일까지.

문의 745-5760

< 송태형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