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영 아프코(AFCO)코리아 회장(63)은 6월16일 말리의 카이역에서
수도 바마코로 떠나는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섭씨 45도의 열대야를 그득 싣고 떠나는 차창밖을 내다보면서 상념에
빠져든다.

금맥을 찾아헤맨 지난40년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검은대륙에서 노다지 꿈을 성취한게 "꿈"만 같다.

조다루마의 금광개발현장에서 카이역까지 털털거리는 지프로 4시간을
꼬박 달려왔지만 조금도 피로하지 않다.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30cm정도는 예사로 튀어오르는 침대칸에 누워 모기와
12시간을 싸워야 하는 바마코행 야간여행이 두렵지 않다.

잠못 이루고 뒤척이는 사이 갑자기 천둥번개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막 한가운데서 열차가 1시간이상 멈춰섰다.

용광로 열기를 식히는 찬바람이 몰려든다.

깜빡이지만 단꿈을 꾸었다.

바마코의 사무실로 돌아가는 마음이 하늘을 날듯 가볍다.

그의 인생항로는 노다지 꿈으로 시작된다.

대학을 포기하면서까지 사금광에 빠졌다.

첫출발은 괜찮았다.

50년대말 청주 주덕면에서 철 1만t을 캐냈다.

이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러나 마땅한 광산을 찾을수 없었다.

그래서 외도(무역업)를 했다.

아프리카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였다.

쌀을 팔기 위해 89년 세라리온을 찾았다.

불안한 정정으로 돈을 제대로 받지못했다.

화폐가치도 갑자기 떨어지곤 했다.

현지에서 믿을 것이라고는 금뿐이었다.

그래서 금장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92년에 케네바(말리)에서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다.

비가 개인다음 원주민의 마당이 온통 누런색으로 변해 있었다.

노다지를 두눈으로 확인한 순간 온몸이 짜릿함을 느꼈다.

잠시 잊었던 노다지 꿈이 되살아났다.

때맞춰 프랑스로부터 독립한후 20년간 계속돼온 사회주의가 막을 내리고
민선정부가 돛을 올렸다.

즉각 광권을 신청했다.

현지법인인 아프코(AFKO)인코퍼레이션도 설립했다.

나라안팎의 내로라하는 경쟁회사들을 제치고 광권을 따냈다.

말리 최대의 황금맥을 손안에 움켜쥐었다.

노다지 꿈을 40여년만에 달성한 것이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