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거래소 신관 건물이 지난 8일 입소식을 가졌다.

하얀 대리석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21층의 이 대형 건물에는 모두 800억원
이라는 거액이 투입됐다.

놀랍게도 한국의 거래소 건물은 증권시장을 개장하고 있는 전세계
거래소들중 가장 큰 것이다.

미국의 뉴욕거래소는 전통의 월가 골목에서 아직도 낡은 건물을 유지하고
있고 영국의 거래소는 지난 86년 빅뱅과 더불어 런던 시내(시티)의 거래소
매장을 아예 폐쇄조치한 바 있다.

도쿄거래소도 도쿄시내 가부토죠에 우리나라의 절반규모의 거래소 건물을
유지하고 있고 외국거래소들중에는 아예 남의 빌딩에 입주해 있는 곳도
많다.

거래소 뿐만도 아니다.

협회나 감독원 역시 웅장한 자체 빌딩을 자랑하고 있고 세계의 유수
증권사들 중에서도 한국의 증권사들처럼 화려장엄한 건물을 보유한 곳은
그리 흔치 않다.

증권시장은 시체말로 죽을 쑤고 있는데 증권관련 기관들은 왜 이리도
대단한 외관을 과시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은 억울한 투자자들의 이유있는
항변이다.

지난해 투자자들이 이런 저런 명목으로 납부한 각종 수수료는 2조원은
족히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큰 돈으로 감독원과 거래소는 아름다운 자체 빌딩을 짓고 증권사들도
여의도 중심부에 마천루들을 올려왔다.

역설적으로 보자면 부동산은 모두 무수익 자산이다.

매년 2조원이 넘는 증권시장의 돈들이 이들 기관을 거쳐 부동산으로
쓸려가고 있으니 주식시장의 유동성은 고갈될 수밖에 없다.

또 이들을 먹여 살리는 투자자들의 주머니도 헐거워질 수밖에 없다.

증권 관계기관들 스스로가 증시 침체의 묘혈을 파왔고 또 파고 있는
셈이다.

증권관계 기관들의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