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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문이 100돌을 맞이했다.

1886년 독립신문이 창간된 이래 신문은 우리 근현대사의 풍랑 속에서
등대로써 불빛을 밝혀 왔다.

어두웠던 시기엔 민족의 운명을 밝혀주는 불씨이자 국가발전의 조타수였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우리의 모든 삶이 신문 속에 담겨있다.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고 역사를 기록한 교과서다.

그래서 지난 신문의 백년을 기억하고 다가올 백년을 점쳐보는 일의 의미는
크다.

신문과 함께 반세기를 살아 온 외곬 언론인 윤임술씨(73)를 찾았다.

그는 해방직후 부산일보에서 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해 지금까지 줄곧
신문과 인연을 맺고 있다.

초대 언론연구원장을 지냈고 부산일보 사장으로 직접 신문을 경영해 보기도
했다.

신문과 함께 외곬인생을 걸어 온 그다.

그는 요즘 방우영 문화재단에서 지난 백년의 신문사설을 정리한
"한국 신문사설 선집"의 발간에 몰두하고 있다.

방대한 분량의 사료다.

그는 신문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에 남다른 애정을 지니고 있다.

이미 지난 80년 한국언론연구원장 재임시 "한국신문백년지"를 엮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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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박영균 증권부장 ]]]

-최근 "한국 신문사설 선집"을 발간하셨는데, 신문 사설들을 모아 엮게된
특별한 뜻이라도 있습니까.

<>윤전원장 =신문은 귀중한 역사 자료입니다.

신문을 읽어보면 거기에는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이 담겨 있거든요.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신문자체에 대한 사료를 모으는데
소홀했습니다.

한성순보부터 시작해 90년대 신문까지의 사설중에서 좋은 것을 선정해
싣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세권이 나왔고 모두 열권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예전의 사설들과 요즘의 사설들간에는 차이점이 많을 것 같습니다.

<>윤원장 =일제말기에 나온 "시대일보"나 "중외일보"를 보면 기명사설이
있지요.

문체도 많이 다릅니다.

꼭 사설이란 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논단 사론 등 여러 이름으로
쓰였습니다.

-사설은 신문의 주장을 담고 있는데 과거 신문의 사설은 주로 어떤 내용
이었습니까.

<>윤원장 =내용면에선 요즘 사설과 많이 비슷해요.

"부패를 척결하자" "썩은 관리를 몰아내자"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당시 시대상황을 엿볼수 있지요.

이런 말도 있습니다.

"금산이 첩첩이고 운해가 만리라도 사람이 썩으면 소용없다" 참 재미있는게
많아요.

-신문 사설을 모으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까.

<>윤원장 =제일 어려운게 신문을 모으는 일입니다.

특히 해방후 3년 동안 신문이 제일 많이 나왔는데 그 때 신문이 보관돼
있지 않아요.

도서관 이용도 힘들고요.

도서관에서는 자료를 빌려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 그런가 살펴봤더니 이용자들이 자기가 필요한 부분을 찢어가기도 해
자료 훼손이 심각하다는 겁니다.

사료를 아끼는 마음이 부족한 건 사실입니다.

-50년 가까이 신문과 함께 생활하셨는데 신문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습니까.

<>윤원장 =해방되면서부터 부산일보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에서 공부하다가 해방되자 국내에 들어와 시작했으니 50년 가까이
됐지요.

처음에는 광고부로 들어갔는데 해방 직후라 편집국에 우리말로 글쓸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편집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신문기자가 돼야 겠다는 생각은 어려서 부터였습니다.

14살때 남한 전체에 대홍수가 들었는데 고향인 경남 창원 일대도 물바다가
됐어요.

사람들은 둑위에 움막과 천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그 때 조선일보가 트럭에 구호물자를 싣고 왔습니다.

그걸보니 어린 마음에 이런 사람들도 다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죠.

흰색 와이셔츠를 받아 입었는데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나도 크면 이런 좋은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후에 일본에서 공부할 때 신문사에 자주 투고했는데 글이 실리는걸 보면서
기자가 돼야겠다는 마음이 굳어졌습니다.

-기자 생활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윤원장 =한번은 교정을 잘못봐 혼쭐난 적이 있습니다.

6.25 때 국군이 북으로 밀고 올라간다는 내용의 기사였는데 "임전무퇴의
기백으로 올라간다"는 글에서 "임전무퇴"가 "임전후퇴"로 잘못 나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밤에 자는데 지프차 두대가 와 끌고 가더라구요.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거죠.

그때는 겁도 나고 정신도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재미있는 사건
이었습니다.

-신문사에서 일하다가 다른 직장을 찾아 자리를 옮기는 사람도 많습니다.

신문사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하셨을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윤원장 =다른 일은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저는 무척 행복합니다.

부산일보 사장을 그만둔 후에 사설정리를 시작한 것도 신문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번 총선에 출마하는 사람들을 보면 언론인 출신이 많습니다.

<>윤원장 =언론계를 떠나 정치를 하는게 나쁠 것은 없습니다.

다만 정치를 잘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론계에 있으면서 비판도 참 많이 했던 사람들이 막상 정계에 들어서면
이건 정치인도 아니고 언론인도 아닌 어중간한 사람으로 낙후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정치를 하기로 마음 먹었으면 제대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신문은 눈에 띄게 성장했습니다.

양적으로 봐도 독립신문은 4면의 지면으로 시작했는데 요즘은 48면 체제가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신문사간의 증면경쟁을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윤원장 =지면이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바빠서 자세히 안보고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300만부 이상이 버려진다고 하니 종이낭비도 심각하고요.

양보다는 질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양적 경쟁에만 치중하는 것 같이 보여 걱정입니다.

양에 치중하다 보면 당연히 질은 떨어지게 되어 있거든요.

언론은 자기반성을 해야 합니다.

정확하고 질적으로 우수한 기사를 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려려면 언론인에게도 재교육과정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많은 사람들은
재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기 때문에 입사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퇴보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언론재단에서 후원하는 교육이 많이 생겼지만 언론인을 위한
재교육 과정이 흔치는 않습니다.

<>윤원장 =언론인에 대한 재교육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기업이 운영하는 언론재단의 도움은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체교육을 해야죠.

한국언론연구원에서 실시하는 교육과정이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기자들에게 묘한 선입견이 있습니다.

언론연구원장으로 있을때 교육받는 기자들을 보면 덮어놓고 교육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들어 두면 좋은 내용도 많았는데도 말입니다.

-요즘은 많은 신문이 가로쓰기와 한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신문도 점차 가로쓰기로 나가는 추세입니다만.

<>윤원장 =읽는데 불편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한글과 한문은 가로쓰기에 맞지 않습니다.

지금 40세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세로쓰기가 편합니다.

하지만 시대 추세를 거스를 수는 없죠.어디가서 세로쓰기를 역설하면
구시대 형편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한문은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언어생활에서 한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 큽니다.

자연스럽게 배워야 하는데 신문에서 한문을 사용하지 않으면 쉽게 익힐수
있는 기회가 사라져 버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문에 대해 "불가근 불가원"을 느낍니다.

<>윤원장 =신문은 속성상 비판을 할때 성역없이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습게도 신문이 성역화 돼고 있습니다.

오보를 내고도 시정은 커녕 사과 한마디 듣기도 힘듭니다.

반론권은 더더욱 안지켜지고요.

신문의 특권의식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틀리면 틀린 만큼 고쳐줘야 합니다.

요즘은 옴부즈만제도가 생겨 전보다는 나아진 듯 하지만요.

신문은 독자와 친해야 살아남을수 있습니다.

-건강하신 것같아 보입니다.

특별한 비결이 있습니까.

<>윤원장 =내 나이가 일흔다섯입니다.

나이에 비하면 건강이 좋은 편이죠.

자랑은 아니지만 요즘도 직접 운전하고 부산에도 갔다가 옵니다.

특별히 하는 것은 없습니다.

하루 하루를 즐겁게 사는게 비결이지요.

마음이 편하면 몸도 편하고 마음이 아프면 몸에 병이 듭니다.

-끝으로 한평생을 신문에 몸담은 대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이 기회에 해주시죠.

<>윤원장 =기자에게는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들의 수명이 짧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술많이 먹고 스트레스 많이
받아 그렇습니다.

자신만의 건강관리 비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자는 공부해야 합니다.

발로만 기사쓰던 시대는 갔습니다.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해야한다는 말입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