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말 서울 강남의 G고등학교 강당.

내신성적 산출방식을 놓고 3학년 이과반 학부모들간에 심한 논쟁이
벌어졌다.

남학생 부모들은 지금까지의 관례대로 "남학생끼리" 내신을 산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여학생 부모들은 "남녀 합해서" 내신을 내야 한다고 맞섰다.

산출방법의 차이로 여학생들은 평균 2~3등급이상 내신에서 손해를 본다는
것.

자녀들의 대학입시가 걸린 문제인 만큼 결론은 쉽게 나지 않았다.

마침내 한 남학생부모의 감정이 폭발했다.

"결혼하면 살림이나 할 주제에 왜 의대나 공대를 택해 남의 입학자릴
뺏고 야단이야"

남학생들의 입학 자리를 "뺏는" 여학생.

한국 사회가 여성을 보는 시각은 대체로 이 정도 수준이다.

이들 여고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일터를 구할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여성취업이 늘어나면 자동적으로 남자들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사회적
편견은 사실 여성들의 취업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요인중 하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더욱 큰 걸림돌이란 얘기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94년 기준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여대생은 모두
7만5,000명.

이중 대학원 진학이나 결혼 등으로 취업을 포기한 이를 제외하면 순수
취업대상자는 5만8,000명.

이 가운데 3만4,000명이 직장을 얻어 외형상 취업률은 59.3%정도다.

우선 수치상으로도 남자 대졸자들의 취업률(77.2%)보다 떨어진다.

문제는 단지 여성 취업률이 낮다는데 있지만은 않다.

실제 취업의 내용은 더 심각하다.

우선 대기업등 소위 안정적인 직장은 "들어가는 문" 자체가 극히 좁다.

자신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분야는 더욱 한정돼 있다.

따라서 대졸 여성인력들 중에선 자신이 원치 않는 직장에 "하향 취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구조적으로 "불완전 고용" "실망 실업"이 팽배해져 있다는 얘기다.

"저임금 단순업무에 실망해 취업을 포기하는 실망 실업까지 고려할 경우
대졸 여성의 실제 실업률은 30%포인트까지 상승한다"(김태홍 여성개발원
책임연구원.여성고용팀)는 연구보고도 이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

취업전문지 리크루트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0대 그룹에 취직한 대졸
여성은 모두 3,637명.

대기업 전체 신입사원(2만7,625명)의 13.6%이며 대졸 여성 취업자의 10.5%
수준이다.

10명중 1명의 대졸여성만이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엄정한 공개 경쟁을 통해 뽑는데 무슨 소리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아도 실력이 없어 못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약간의 산술적 논리력을 동원해 보면 실제와 현상간에는 상당한
"역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통상 대기업 지원자중 남성과 여성의 비율은 7:3 정도.

필기시험이나 서류전형을 거치면 오히려 여성의 비중은 약간 올라간다는게
대기업 인사담당자의 설명이다.

반면 실제 여성의 합격률은 "13.6%"에 불과하다.

지원자와 합격자 간에는 최소한 "16% 포인트"의 갭이 존재한다.

이는 면접관이 대부분 남자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편차"일
수 있다.

또 여성들의 면접태도가 대체로 "일꾼"으로선 적합지 않게 비쳐졌기 때문
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이점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
하고 있다.

중견상사에 다니는 C씨(22)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그녀는 지난 2월 Y대 수학과를 졸업한 새내기 직장인.

C씨는 지난해 여름부터 대기업 은행 등 네군데에 원서를 내 서류전형을
거쳤지만 면접에서 모두 떨어졌다.

그녀가 면접때마다 곤혹스러웠던 것은 "왜 직장을 가지려고 하느냐"는
질문이었다.

"남자 대학졸업생에게 그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자가 직업을
갖는다는 건 아직도 "특별한" 경우라는 것이죠"

그녀의 이유있는 항변이다.

뿐만 아니다.

눈에 보이는 장벽도 여전히 있다.

남녀고용 평등법에도 불구하고 구인광고에 남성만을 뽑는다는 문구를
삽입하는 "용감한" 기업이 있는가 하면 여성초임과 남성초임을 차등 지급
한다는 내용을 버젓이 공개하는 기업들도 부지기수다.

아예 여성들에겐 문호를 개방하지 않거나 차별을 구조화하는 "횡포"임에
틀림없다.

물론 여성 취업률이 낮은 이유를 무조건 기업이나 사회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문제다.

여성 자신의 불분명한 직업관이나 업무관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

"여자로서의 권리만 주장할 뿐 직업인으로서의 의무는 소홀히 하는 여성들
이 있다"(D그룹 인사담당자)는 뜻이다.

또 현실과 동떨어진 근로기준법상의 여성보호규정도 문제다.

"여성에게 근로기준법을 곧이 곧대로 적용하면 남자사원을 고용하는 것보다
1.5배이상 경비가 발생"(K기전 인사부장)하기 때문이다.

여성근로자의 초과근무시간을 1일 2시간 이내, 주당 6시간 이내로 제한하는
등 근로기준법상의 "과도한" 여성보호규정이 역으로 여성취업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모성보호"와 여성에 대한 "과보호"는 구별돼야 한다는 지적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인력은 한국 경제가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설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다.

한국경제 도약의 발판은 인적자원일 수 밖에 없고 발굴되지 않은 무한한
자원은 바로 여성인력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앞으로 5년이면 21세기.

창의성이 요구되는 소프트사회가 눈앞에 와 있다.

여성 취업을 가로막는 각종 장벽은 미래를 여는 가능성의 싹부터 자르는
격이다.

< 이의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