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청자 < 무용가/세종대 교수 >

21세기가 눈앞에 다가온 지금,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수 없는 문명의
홍수와 예술의 풍요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에게 보여지는 문화예술 현상들은 다원화된 양식과 나름의 변혁적
의미를 두고 저마다 독특한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명의 미래창조와 인간의 풍요를 추구하는 기업문화가 경쟁속에서
선택된 자유를 추구하는 것처럼,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예술가들은 규율
에서 벗어난 삶의 자유를 추구하며 선택된 창작의 자유를 표현하고자
한다.

나 또한 춤을 통해 선택된 창작의 자유를 누리는 한편 세계인이
공유할수 있는 움직임의 미적 표현을 창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직접 춤을 추고 창작하는 과정을 통해 개념화된 여타의
논리나 어떠한 언술로도 표현할수 없는 감동과 희열을 맛보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예술창조의 감동과 희열을 대중과 함께 공감할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가고자 노력한다.

음악이나 미술과 마찬가지로 춤의 대중성 확보는 인간본성을 아름다운
예술적 표현으로 승화시키는 데서 시작된다.

무용인만이 전유하는 추상예술을 넘어 대중이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생활속의 즐거움을 체험할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현대예술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과제이기도 하다.

춤예술의 대중성도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여 세계인의 공감을 얻어야만
가능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안무가와 무용작품이 관객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기업문화도 이제는 기업과 국가홍보를 위한 문화사업
지원이라는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세계가 공유할수 있는 우리 예술상품의 대중화에 계획적이고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70년대후반 영국유학생활중에 잊혀지지 않는 것은 한국이 패망한 월남에
비유되었던 것과 나의 출신지가 남한인지 북한인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나는 이러한 일들이 우리나라가 외국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가 추구해야할 춤의 방향을 가늠하게 됐다.

이때부터 한국의 혼과 정서를 작품속에 담아 세계인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외국에서 수입돼온 현대무용에 한국적인 색채를 가미해 역으로 외국에
소개하는 작업은 쉽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결실을 맺어갔다.

88년 서울올림픽의 개.폐회식 예술행사 안무를 맡은 나는 얼마후 해외
공연에 나섰다.

당시 홍보용으로 상영된 개.폐회식장면을 보고 미국인들이 환호하던
장면은 지금도 잊을수 없다.

한국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던 그들의 모습은 우리의 달라진 문화적
위상과 국제무대 진출가능성을 실감하게 했다.

또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영국을 방문했을 때 유럽의 많은 예술가와
평론가들이 88올림픽 공연장면과 유럽공연을 통해 소개된 툇마루무용단의
"불림소리"와 "사계중 가을"에 보내준 찬사도 생생하다.

다이내믹한 율동과 한국의 서정성을 조화시킨 우리의 현대무용이
세계무대에서 손색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생활양식이 급격히 변화해감에 따라 삶의 구조와 패턴이 다양해지고
문화예술을 향유하려는 욕구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아울러 문화예술이 유력한 전략상품으로 부상하고 있다.

단순히 문화예술을 후원한다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여온 기업도 적극적인
직접투자에 눈을 돌려야할 때가 온 것이다.

이러한 문화예술 투자를 통해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선진적인 기업
문화와 외국의 문화침투에 맞설수 있는 경쟁력있는 문화상품이 창조될수
있을 것이다.

우리 문화예술의 새로운 미래창조를 위해 기업인과 문화예술인의
앞서가는 시대정신과 책임의식이 절실히 요구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우리시대 예술가들의 창조적인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