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순 < 북한연구소 이사장 >

대북 식량지원문제와 관련, 유엔은 국제사회에대해 더 많은 구호활동을
펴야 한다고 촉구했으며 이같은 유엔의 촉구에 마음을 열어놓고 있다는
미국의 입장표명(H 콜바스 번스 미국외무대변인)이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한국의 입장과는 주조를 달리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한국은 지난달 26일 한.미.일 3국간 하와이 고위정책 협의회에서 "북한의
식량난은 해마다 거듭되는 구조적인 것이기 때문에 일시적 긴급구제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금년의 경우는 홍수에 의해 더욱 악화된 것으로서
당장 기아상태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고 적어도 금년 8월까지는 지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3국은 당분간 정부차원의 대북지원을 않하기로 합의했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보다 앞서 보도된 바와 같이 백악관은 지난달 18일 앤서니 레이크
대통령안보담당 보좌관의 주재로 국가안보위원회(NSC) 관리들과 외부전문가
들이 참석한 북한사태 긴급회의를 소집, 북한의 식량사정악화에 따른 체제
동요와 군사적 불안상태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고 식량원조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일련의 사실등을 종합해 볼 때 미국은 대북 식량원조를 우리보다
서두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한반도안보와 결부시킨 정책차원에서 출발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그러나 대북식량지원이 엄격히 인도적 구휼목적에 이용되지 않고 구휼이외의
다른 목적으로 전용된다는데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인민군의 귀순하사관이 증언하듯이 군용으로 전용된다면 우리는 적을 돕는
전략물자를 제공하는 꼴이 된다.

한-미간의 대북정책 공조체제에서 본다면 북한의 핵공갈에서 시작하여
KEDO 사업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몇차례의 불협화의 고비를 참고 넘겨야
했다.

그러나 이번 대북 식량지원까지도 그같은 전철을 밟아서는 안되겠다는
것이 한국의 민심이다.

더구나 총선과 대선을 해마다 연거푸 치러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한.미.일
3국 공조체제가 행여나 저항민족주의를 가장한 친북좌익으로부터 사대적
이라는 도발대상이 돼서는 안되겠다는 부담도 있다.

당사자원칙의 한국입장에서는 한반도문제의 3국공조체제가 당연히 자국
중심의 공조체제여야 한다는 입장을 쉽게 버릴 수 없다.

만일 공조체제가 사대적이라는 평을 듣게 되면 총선에서는 여당이 불리하게
될 것이다.

대북 식량지원을 위한 공조체제가 자국중심체제냐 사대적이냐 하는 문제는
단순히 인도적 구휼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김정일체제론 살려두고 키워가면서 남북관계론 점진적으로 물러나갈
것인가, 아니면 사라질 것은 차라리 라지게 하고 새로 생겨나는 세력과
함께 해답을 모색해야 할 것인가, 또 이밖에 다른 제3의 방도가 있다면
어떤 것이겠는가 하는 정치적 역사적 접근문제로까지 이어져 나간다.

고장난 비행기로 비유되는 북한을 연착륙시켜 불의의 대형사고를 막으면서
자본주의를 배우게 하고 익숙케 하며 그들로 하여금 개혁개방의 길을 스스로
택하도록 하자는 것이 서구적 합리주의이다.

미국과 일본은 물론 그편이다.

따라서 미국과 일본은 현안계로서는 한반도 통일이 급선무가 아니고 한반도
그 국화정책이 급선무일 수 밖에 없다.

미국이 한국을 따돌린 북한과 합의하여 국무부 연락사무소를 평양에 설치
하기로 결정한 것과 최근에는 그것을 북한이 원하는 대표부문까지 승격
시킨다는 설이 나돌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한 사실이 아니다.

일본은 미국이 개척해 주는 상황과 한정에 기다렸다는 듯이 편승하여
미국과 경쟁적으로 국교수립이라는 외교적 평양진입을 서두르고 있다.

김정일체제를 죽이지말고 살려두면서 이 집단과의 관계개선으로 일본외교의
부채를 청산하고 일장기를 북한에 게양하는 그날을 그려보는 것이다.

김정일체제를 살려두고 한반도 그 2국화시대를 연장하는데 따른 국익은
러시아와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러시아는 구연방세대에 스탈린정부가 북한에 건설해 놓은 기본건설 65%를
포기한다는 선언을 낸 일이 없다.

러시아는 북한과 연관된 정상관계를 수립함으로써 구소련의 기득권을
수호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으로 본다.

중국은 현실적으로 김정일권력에 도전할 수 있는 그 어떤 세력도 북한에
넓기 때문에 김정일권력을 승인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일권력의 붕괴와 북한의 인민공화국의 붕괴로 동일시하지 않고
있어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는 과거와는 다른 변화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모택동시대에는 오직 대북한정책만이 한반도정책이었지만 지금은 평양이
있으면 서울도 있다는 황해3국시대를 전개하고 있다.

때문에 중국은 미국과 일본의 "제국주의적" 한반도진입을 중국의 주변지대
침입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내적으로 강렬해지고 있다.

김일성사후 1년반이 되는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의 대륙정책은 과연 서구적
합리주의타의 변함없는 공존체제로 나갈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과는 선린관계의 보편주의를 가지고 한반도증심의 동방
제1주의 시대를 개척하는 북한 흡수노선으로 나갈 것인가.

이밖에 제3의 광도가 있다면 무엇일까.

총선에서의 정견을 들어보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