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반포 한신아파트에 사는 곽화영씨(33)는 인근에서 알뜰주부로 명성이
자자하다.

그녀는 지난 93년부터 이색적인 부업을 해오고있다.

33평형 아파트의 방 하나를 개조해 미니 옷가게를 차린 것이다.

여러 경로를 통해 "상표없이" 시장에 나오는 고급옷들을 아파트 주민들에게
헐 값으로 공급하는 장사였다.

판촉은 속칭 "찌라시"를 이용했다.

간판도, 종업원도, 가게도 없었지만 곽씨의 장사는 의외로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아파트단지내 고급할인의류에 대한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곽씨 부부는 처음 아파트를 팔아 부업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러나 장사를 해본 경험이 없는데다 어렵게 마련한 집을 판다는 것이
아무래도 마뜩짢았다.

그래서 집안에 가게를 낼 생각을 떠올린 것이다.

곽씨는 "아이디어만 좋으면 주부들도 얼마든지 고수입을 올릴 수 있다"며
"삼성그룹에 근무하는 남편의 수입보다 낫다"고 귀띔했다.

그녀는 올해 친정의 지하주차장을 개조해 반듯한(?) 옷가게를 차릴 꿈에
부풀어있다.

그러나 부업을 하려는 주부들이 모두 곽씨처럼 수완이 좋은 것은 아니다.

우선 목돈을 구하기가 어렵다.

그럴 듯한 부업수단을 가지려면 최소 3천만원가량은 손에 쥐어야한다.

그래서 집을 팔고 전세로 옮겨가면서 부업자금을 마련하는 수 밖에 없다.

아니면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에 대출을 받아야한다.

이런 방법으로 목돈을 마련한 주부들은 비교적 땅값이 싼 대도시 변두리나
아파트단지 상가에서 비디오가게 책대여방 제과점 등을 차린다.

특별한 상술이 없어도 운영할 수 있는데다 위험부담이 크지않은 장사들
이다.

결혼 7년째를 맞은 남재경씨(32.서울시 송파구 오금동)는 지난해말 5년를
기다려 강남에 재개발아파트를 일반분양받았지만 1천5백만원의 이득을
남기고 되팔았다.

작은 제과점을 차리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요즘 3개월과정의 제빵학원을 다니고있다.

남씨는 "수강생의 면면을 살펴보면 30대가 대부분"이라며 "요즘 아파트
주변에서 부업을 생각하지않는 주부는 바보로 취급당한다"고 실정을 말했다.

화섬업종의 중견기업에 근무하는 그녀의 남편은 부업을 한사코 말렸다고
한다.

그러나 기업마다 승진연령이 낮아지면서 생기는 "불안"과 도시생활에서의
높은 생계비는 남편의 고집을 돌리기에 충분했다.

이웃의 부업열풍도 그의 자존심 실추(?)를 슬쩍 감춰주었다.

요즘 부동산을 처분한 뒤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을 수있는 장사로 각광
받는 것은 화장품할인점.

지난해부터 부쩍 많이 생겨난 이 점포는 부업전선의 단골품목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잠실상가에서 "뷰티 화장품숍"을 운영하고있는 송미경씨(35)는 "25평형
장미아파트를 팔고 남는 차액으로 가게를 마련했다"며 "인근에 여성고객들이
많은데다 입.폐점시간이 자유로워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업에 나선 맞벌이부부의 앞길이 항상 밝은 것은 아니다.

보람은행 청담동지점에서 대부업무를 맡고있는 박광일씨(32)는 "최근들어
주부들이 담보대출을 받았다가 이를 갚지못해 낭패를 겪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며 "부업에 실패했을 때 부부간 불화로 연결되는 사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 조일훈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