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기산업의 선구자인 일본 닌텐도(임천당)가 오는 4월21일 64비트
비디오게임기 "닌텐도 64"를 내놓는다.

64비트급으로는 세계처음이다.

게임기업계 관계자들은 닌텐도가 64비트 시장을 선점함으로써
"닌텐도신화"를 재현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닌텐도는 8비트와 16비트 시절엔 줄곧 선두를 달렸다.

그러나 32비트급으로 넘어오면서 주도권을 라이벌인 세가에 넘겨주고
말았다.

32비트 시장은 세가와 신규업체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SCE)의
싸움터로 변했다.

닌텐도는 왕좌를 되찾기 위해 64비트급 신무기를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닌텐도 64"는 지난해 11월24일 도쿄에서 첫선을 보였다.

이날 드러난 "닌텐도 64"의 특징은 크게 세가지.

첫번째는 64비트 CPU(중앙연산처리장치)를 장착하고 있어 현재의
주력제품인 32비트 게임기에 비해 명령처리속도가 훨씬 빠르고 영상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그만큼 입체감이나 생동감이 풍부하다는 평을 받는다.

두번째 특징은 입력장치로 3차원 스틱을 채택하고 있는 점이다.

게임 배경화면이 3차원일 뿐만 아니라 이 공간에서 게임을 펼치는
주인공이 3차원으로, 즉 전후 좌우 상하로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얘기다.

세번째 특징은 통신으로 게임 프로그램의 내용을 일부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닌텐도는 미국 소프트웨어업체 네트스케이프와 제휴, 인터넷 접속
소프트웨어 및 모뎀을 내장한 카세트형 전용 어댑터와 자기디스크장치를
연말께 내놓을 예정이다.

이 계획이 실현되면 자기디스크에 수록된 게임 내용을 바꿀 수 있게
된다.

야구선수의 타율이나 방어율을 변경하는 것이 일례이다.

닌텐도는 "닌텐도 64"를 싼값에 내놓음으로써 일시에 게임기시장을
뒤흔들겠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닌텐도 64"의 판매예정가는 2만5,000엔(한화 약18만5,000원).

현재의 주력제품인 세가의 32비트 게임기 "세가새턴" 실제판매가격보다
싸고 SCE의 "플레이스테이션" 가격과 비슷하다.

물론 경쟁업체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닌텐도 64"의 바람을 잠재우기 위해 벌써부터 가격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세가와 SCE는 게임기 수요의 4할 가량이 집중되는 연말연시 성수기를
맞아 지난해 11월말부터 가격할인 판촉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닌텐도가 64비트 게임기 판매에 돌입하는 시점에는 값을 더 내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양사는 32비트를 출시한지 1년여 기간에 각기 200만여대를 팔았다.

"200만대"는 닌텐도가 넘어야할 높은 벽이다.

소프트웨어업체들은 "세가새턴", "플레이스테이션" 등이 시장을 주도하자
여기에 맞는 게임 타이틀을 만드는데 정신이 팔려 있다.

그만큼 닌텐도의 우군 확보가 어려워졌다.

믿었던 다카라와 다이트마저 지난해말 "닌텐도 64"용 게임 타이틀
개발을 중단하거나 상품화계획을 취소해 버렸다.

게임 소프트웨어업계를 이끌고 있는 이들의 이탈은 닌텐도에는 큰
타격이다.

닌텐도는 타임워너 인터랙티브 등 외국업체들로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하지만 게임 타이틀 부족으로 32비트 경쟁에서 세가에 주도권을
빼앗겼던 악몽을 잊을 수 없다.

더구나 "닌텐도 64" 출시 시점이 예정보다 넉달 가량 늦어졌다.

이에 96년도 판매목표도 300만대에서 110만대로 낮춰잡아 놓은 터이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닌텐도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해 도쿄증시에서 주가가 가장 많이 오른 두 종목 가운데 하나는
닌텐도였다.

< 김광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