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인이 보옥을 돌아보며 염려스런 표정을 지었다.
"오늘 피곤한 얼굴이네요.
대부인의 방에서 재미있게 놀다 온 거 아니예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누이들이 서로 싸우고 해서 좀 피곤해졌나봐. 여자들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보옥이 습인이 펴준 요 위에 드러누우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요? 될 수 있는 대로 누이들이랑 같이 놀지 말라고
그랬죠?"
습인이 보옥에게 잠옷을 입혀주기 위해 평상복을 하나씩 벗기며
타이르는 투로 말했다.
"상운 누이가 오랜만에 놀러왔다고 하는데 그냥 모르는 척 할 수
있어야지.
그래 같이 놀다가 또 싸움이 붙은 거지.
누이들이 습인이처럼 마음들이 넓었으면 좋겠어"
그러면서 보옥이 슬그머니 손을 뻗어 습인의 넓고 불룩한 젖가슴을
만졌다.
습인은 보옥이 그렇게 젖가슴을 만지도록 내버려두며 옷을 대강
벗기고는 잠옷으로 갈아입혀 주었다.
그러고 나서는 보옥의 손을 살짝 뿌리치고 바깥방으로 나갔다.
다음날 아침, 보옥은 일어나 옷을 꿰어입기가 무섭게 대옥의 방으로
건너가 보았다.
대옥의 몸종인 자견과 상운의 몸종인 취루는 벌써 일어나 나갔는지
보이지 않고 대옥과 상운 둘만 아직도 이불속에서 자고 있었다.
대옥의 이불은 빨간 살구빛 명주 이불이었고 상운의 이불은 분홍빛
이불이었다.
대옥은 비교적 단정한 자세로 자고 있는 반면에, 상운은 칠흑같이 검은
머리를 치렁하게 베개 위에 흐트러뜨린 채 이불을 가슴 아래까지만 덮고
두 팔은 아예 이불 밖으로 내어놓고 있었다.
잠옷 소매가 헐렁하여 두 팔이 맨살을 드러내놓고 있었는데, 그 살결이
너무나 희어 탐스럽기 그지 없었다.
두 팔목에는 각각 금팔찌가 끼여 있어 살결이 더욱 희게 빛나는 듯이
보이기도 하였다.
보옥은 침을 삼키며 허리를 구부려 상운의 두 팔을 쓰다듬어 볼까
하다가 상운이 잠꼬대를 하며 몸을 뒤척이는 바람에 다시 바로 섰다.
이불밖으로 드러난 상운의 가슴은 습인만큼이나 불룩하였는데, 보옥은
그 가슴도 만져보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러고 있다가 몸종이라도 들어오면 창피스러운 일이라 보옥은
마음의 충동을 억누르고 상운의 이불을 끌어당겨 바로 덮어주는 척하며
옆에서 누가 듣기라도 하는 듯이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불을 잘 덮지 않으면 찬바람을 맞아 어깨뼈가 쑤실지도 모르는데"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