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대통령이 구속기간 만료일인 5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의
뇌물수수죄목으로 검찰에 의해 정식 기소되었다.

검찰이 계속 보강수사를 통해 미진한 부분을 캐겠지만 공은 일단 법원으로
넘어갔으며 노씨는 이제 대통령 자리를 이용해 엄청난 축재를 한 죄인으로
법정에 서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는 앞으로 비자금사건뿐 아니라 지난 3일 구속된 전두환 전대통령과
함께 12.12 군사반란과 5.18 사건의 피의자로서도 재판을 받아야할 처지다.

재판은 아무리 서두른대도 1심 선고까지만으로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두 사람의 재판은 세계의 이목을 모으고 국내의 정치 경제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칠 "세기적 사건"이 될 것이다.

검찰은 노씨에게 돈을 건넨 기업인들에게는 가급적 관대한 처리를 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고 말하고 싶다.

경제를 걱정하고 국가 이미지, 나라의 장래를 염려한 결과로 본다.

다만 일부이긴 하나 세계적인 대기업그룹 총수들을 기어이 법정에 세워야
하느냐는 점은 생각해볼 문제다.

노씨가 정확히 얼마를 거둬 어떤 용처에 얼마를 썼느냐는건 지금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기업이 이런저런 이유로 큰 돈을 권력자에게 줬고, 권력자는
그 돈을 개인의 축재와 정치자금으로 써온 사실이다.

가.차명예금, 부동산투자, 아직 조사중인 스위스은행 비밀계좌 은닉가능성
등 사욕채우기에 수천억원을 쓴게 놀랍고 가증스런 일이지만 요컨대 핵심은
권력을 중심으로 기업과 정치권 사이에 엄청난 돈이 불법-음성적으로 오가는
관행이 드러난데 있다.

검찰발표는 단지 얼마정도가 선거와 정당운영비 등으로 정치권에 들어
갔다고 했을뿐 구체적으로 여.야 정치인 누구누구에게 얼마가 갔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는 앞으로 정치권에 대한 사정과 대대적인 정치인 물갈이가 있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국민의 관심은 비자금의 조성내역보다 사용처에 있다.

자진해서 한두푼도 아닌 거액을 낼 기업인이 어디 있겠는가.

안주고는 못배기게 돼 있는 풍토가 문제다.

어디 정치자금 뿐인가.

온갖 규제의 울타리속에서 관행처럼 벌어지고 있는 일상의 부조리를
국민들은 모르지 않는다.

이 모든걸 우리는 준조세로 얼버무려 지금껏 별 저항과 반성없이 묵인하고
살아왔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사법당국이나 정치권 경제계 일반국민 할것없이 이번 사건을 통해 정경
유착의 고리를 단절하고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무거운 처벌은 노씨 한사람으로 족하다고 본다.

기업인에 대한 처벌은 관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답은 정치에서 나와야 한다.

돈안드는 정치, 돈이 덜드는 정치를 할수 있어야 한다.

내년봄 총선은 그래서 승패를 떠나 새로운 정치풍토와 정치자금 관행을
실현하는 계기가 돼야 하며 이를 위한 제도개선과 사람교체가 그 안에
마무리돼야 한다.

곧 있을 개각내용과 정계개편의 방향이 중요한것은 그 때문이다.

비자금사건 심판은 법에 맡기고 이제부터는 정치와 경제를 챙겨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