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비를 모시고 있는 여관 소용이 후비의 뜻을 태감에게 전하였다.

"면 하라"

지금 가사 대감댁 사람들이 후비에게 인사를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후비 원춘은 큰 아버지인 가사 대감댁 사람들의 문안 인사를 받는 것이
송구스럽게 여겨졌던 것이었다.

소용의 전갈을 받은 태감이 가사 대감댁 사람들을 인도하여 물러났다.

그 다음 태감들이 대부인을 비롯하여 영국부의 부인들을 동쪽 계단으로
부터 인도하여 후비에게 인사를 드릴 채비를 하도록 하였다.

그러자 또 소용이, "면 하랍신다" 하고 전갈하였다.

이번에도 태감이 영국부 부인들을 인도하여 물러났다.

그렇게 집안 어른들의 인사는 받지 않고 차를 석잔 받아 마시는
다례를 치른후 원춘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려왔다.

그러자 양쪽 계단에서 울려퍼지던 주악소리도 그쳤다.

원춘은 측전으로 들어가 성친용 옷으로 갈아입고 역시 성친용 가마를
타고 후비 별채를 나와 먼저 대부인의 처소로 갔다.

이제 후비가 손녀의 예로써 대부인에게 문안을 드릴 차례였다.

그런데 후비가 대부인의 인사를 면하게 한 것처럼 대부인도 원춘의
문안을 극구 사양하였다.

아예 무릎을 꿇으면서 까지 만류하였다.

대부인이 무릎을 꿇자 원춘의 어머니 왕부인도 무릎을 꿇었다.

"할머니, 어머니, 이러시면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원춘이 당황해 하며 한 손으로는 대부인을, 다른 한 손으로는 왕부인을
부축하여 일으키려 하였다.

"아무리 육신으로는 할머니, 어머니라 하더라도 후비가 되신 존귀한
몸이 엎드려 절하는 것을 용납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왕부인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괴어들고 있었다.

대부인도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지금은 할머니, 어머니께서 후비인 저를 보러오신 것이 아니라 제가
손녀와 딸로서 성친을 온 것입니다"

원춘의 두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하였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 할머니, 어머니의 얼굴인가.

궁궐의 화려한 생활도 고향집 식구들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도 메워주지
못했다.

수많은 밤을 식구들에 대한 생각으로 지새우며 소리죽여 울지 않았던가.

그동안 할머니, 어머니의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난 것을 보고 원춘은
더욱 마음이 아팠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