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휘 대만총통의 방미 이후 표면화된 미국과 중국간의 알력이 시일이
지나면서 해소되기는 커녕 점차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느낌이다.

중국은 79년 미.중 수교이후 처음으로 주미 대사를 소환하는등 잇따라
시위성질은 대미 보복조치를 발표하고 있다.

또 대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당초 예정된 고위급회담을 취소했는가
하면 지난달 말부터는 대만해협부근에서 군사기동훈련을 실시함으로써
긴장의 파고를 높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미국도 중국의 반발에 아랑곳 않고 미.대만 단교이래 최초로 차관급
협의기구를 설치한데 이어 대만에 대한 무역제재를 일부 해제함으로써
중국의 분노를 샀다.

미국과 중국은 수교이래 10년간 대체로 밀월관계를 유지했으나 89년
천안문사태 이후 통상 인권 무기판매 문제를 둘러싸고 마찰이 일기
시작했다.

소련의 붕괴로 냉전 체제가 종식되면서 중국의 전략적 가치가 떨어진
것도 두나라간의 관계 악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 카드를 사용했던 미국이 소련의
위협이 사라진 대신 중국의 위협이 커지는 상황에서 중국에 대한
견제심리가 작용하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중국은 최고실력자 등소평 집권이후 근 20년간 연10% 내외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계속해 왔다.

이같은 성장속도가 앞으로도 당분간 유지된다면 2020년 쯤에는 중화경제권
규모가 미국을 앞지를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중국은 경제성장에 힘입어 군사적으로도 이미 강대국의 반열에 들어
동아시아 지역의 세력균형을 위협하고 있다는게 미국의 시각이다.

중국은 최근 국제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하 핵실험을 강행했고
이란 파키스탄등 국지적 분쟁의 소지가 있는 나라에 미사일 판매를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이같은 중국의 정책이 지역 패권장악이라는 차원을 넘어
군사력의 세계화를 지향하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미국의 세계전략에 비춰볼 때 중국이 팽창주의적인 대외정책을
계속하는 한 미.중 두나라간의 마찰은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로서는 중국이 지역패권을 추구하고 있다는 식의 미국의 시각을
일방적으로 지지하고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본다.

현재 동남아 국가들은 남사군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으로 군사적으로
중국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는 중국의 현행 대외정책이 안보면에서 우리에게
위협이 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중국의 경제성장은 우리에게도 바람직한 일이다.

이 점에서 미.중간의 정치 군사 외교노선을 둘러싼 갈등이 엉뚱하게
경제마찰로 비화되지 않기를 바란다.

특히 양국관계의 악화가 최근 해빙조짐을 보이고 있는 한반도의 장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우리나름대로의 세심한 입장정리가
필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