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대통일원차관은 17일 "남북한 북경접촉이 차관급회담에 이를때까지
이를 비밀로 할수 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안유지가 이번 작품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고 털어놨다.

송차관의 이같은 발언은 이번 북경회담이 얼마나 극도의 보안속에 추진
됐는지를 가늠케 한다.

사실 남북한 북경비밀회동은 지난 주말부터 진행돼 왔다.

남측대표는 홍지선 무역진흥공사(KOTRA) 북한실장.

북측은 삼천리총회사 김봉익사장.

양측은 쌀지원문제와 관련, <>쌀 제공은 민간창구를 통하되 <>당국간 차관
회담을 거친다는 두가지 원칙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북측은 회담격을 높여 전금철 아태평화위부위원장(차관급)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홍실장은 이때 본국과 협의를 거쳐 한국정부가 이석채재경원차관(남북경제
교류위원장)을 보낼 것이라는 점을 알렸다.

이때가 15일.

물론 한국정부는 비밀회동 자체를 부인하고 있을때였다.

그러나 북한은 이같은 합의사실을 NHK나 시사통신등 일본언론을 통해
조금씩 흘리기 시작했다.

일본언론은 연일 "쌀제공 남북합의"를 보도했다.

그러자 정부일각에서도 말이 새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16일밤 우리측 대표가 이차관임이 알려지고 17일 북경회담설이 사실로
확인됐다.

이같은 북한의 언론플레이로 말미암아 정부일각에서는 "북한이 일본쌀을
받기위해 마지못해 우리측과 만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북한은 한국정부 당국자와 만나기전에는 일본으로부터 쌀을 받기 힘들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경 차관급회담은 일본쌀을 받기위한 요식행위이고 실상은 일본과
의 수교를 앞당기려는 "불순한 의도"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같은 북측의도에 개의치 않고 있다.

어찌됐든 이번 회담을 계기로 당국끼리 만난다는 것, 그리고 남한쌀이
북한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번 회담은 경색국면에 빠져있던 남북한 관계 전반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할것"이라고 말했다.

경수로타결에 이어 쌀지원문제만 잘 풀리면 남북교류는 새로운 차원에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또 당국간 대화채널만 유지되면 이산가족 재회나 8.15공동경축행사등
남북간 현안문제에 관한 별도회담도 기대할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일각의 이같은 낙관에도 불구, 회담의 순항을 가로막는 암초가
군데군데 도사리고 있다.

제공될 쌀의 양은 별 문제가 안된다.

가장 큰 쟁점은 쌀의 "포장"문제다.

북한은 당국자회담을 받아들이긴 했으나 제공주체는 민간기업 또는 공사로
해달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수송절차도 논의를 거듭해야될 사안이다.

북으로선 가능한한 주민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들여오는 쪽을 선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은 2~3일 정도 걸릴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 기간중 양측은 이들 쟁점사항을 중심으로 "밀고당기기"를 계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 김정욱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