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잊고 사는 인생처럼 행복한 삶은 없지 않을까.

82년 늦은봄 고교동창 8쌍이 늘푸르고 싱싱하게 살자는 뜻으로 모임을
갖은 "금잔디회"는 올해로서 회원의 나이가 모두 이순이 지났다.

그러나 회원중 자기 나이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것 같다.

서울역 뒤 만리재 언덕에 자리잡은 학교문을 뒤로하고 세파에 발디딘지가
어언 40년이 지났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어쩔수없이 내일의 우리가 아닌 어제의 우리가 될날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매월 한차례 우리의 모임은 학창시절의 혈기왕성 했던 낭만 그리고
그 시절의 버릇을 그대로 발산하며 세상시름 다 잊는다.

세련된 매너와 유모어 감각이 뛰어난 유승춘회장을 비롯해서 윤정식 서정렬
한흥석 최용빈사장은 기업을 경영하고 조종칠 권영천원장은 학원을 운영
하고 있다.

필자는 30년이상 공직생활에서 지난해 정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공직에 메인 본인으로 인해 모임일자를 여러번 바꾸어야 했던
회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부부동반인 우리모임을 어려웠던 시절 부엌도 없는 단칸방에서 새살림을
꾸려가면서 연탄 한장을 아끼기 위해 졸음을 참으며 밤잠을 설쳐야 했고
남편 뒷바라지 자녀교육에 30년이상 자신을 버리고 살아온 부인들의 주름살
을 조금이라도 펴주기 위해 우리는 숨쉴 겨를이 없다.

날이가고 세월이 지나면서 부인들의 대화도 어려웠던 신접살림에서부터
아이들 교육문제와 자녀혼사 이야기로 변해왔고 요사히는 며느리 손자손녀
자랑으로 꽃을 피운다.

좀더 세월이 지나면 또 어떤 이야기가 오고갈까 허무한 마음이 앞선다.

서른살이 되도록 장가못간 우리자식에게 생질녀를 선듯 며느리로 맺어준
것도 금잔디회 모임의 결실이다.

회원중 친상을 당했을때 약속이나 한것처럼 모두 상복차림으로 문상객을
맞이하는 모습은 정말 끈끈한 정감을 확인할수 있다.

그동안 기금도 적지않게 적치되어 앞으로 부인들의 뜻에 따라 아낌없이
멋지고 보람있는 곳에 쓸것이고 희노애락을 함께하며 죽는 그날까지 늘
푸르고 싱싱한 금잔디처럼 나이를 잊은체 똘똘뭉쳐 살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