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죽으면서 사랑하는 부인에게 전재산을
물려준다는 유언장을 썼는데 "단 부인이 재혼할 경우에 한한다"는
단서조항을 붙여 놓았다.

"그러면 나의 죽음을 애석해 할 남자가 적어도 한 사람은 있게 될것"
이라고 부연한 짓궂은 해명이 더 진한 감동을 준다.

1880년 뉴욕의 어느 돈 많은 재단사는 모든 재산을 조카들에게
물려주고 죽었는데, 71벌의 바지만은 경매에 붙여 팔라는 유언장을
남겼다.

유언에따라 바지는 경매에 붙여졌고 그 바지를 산 사람들은 꿰매져
있는 호주머니속에서 1,000달러씩을 얻는 횡재를 했다.

"유언장"이라면 왠지 죽음과 재산분쟁에 따른 친족들간의 지저분한
불화가 연상돼 기분이 언짢아 지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죽음을 달관한 이들의 이런 예들을 보면 죽은이의 넉넉한
마음의 여유가 느껴져 꼭 그렇지만도 않다.

한국에서는 일찍부터 유언이 관행처럼 돼 있었다.

"경국대전"의 형전사천조에는 "조부모와 부모의 유선만이 효력이 있다"는
조항이 보이고 "속대전"형전문기조에는 "외조부모의 유서도 모두 통용된다"
고 규정해 놓았다.

따라서 소유재산을 나누어주기 위해 유언할수 있는 자는 조부모 부모
외조부모에 국한돼 있어던 셈이다.

그러나 지금은 만17세만 되면 금치산자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유언을
할수있는 유언자유가 민법에 보장돼 있다.

근래에 교통사고 질병 사건이 급증해 "죽음은 나이와 관계없다"는
생각이 확산됨에 따라 30~40대가 미리 유언장을 서놓고 공증까지 받아
놓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은행의 "유언신탁"가입도 증가하고 있다고한다.

그러나 자신이 죽은 뒤의 재산처분에 대비해 유언장까지 작성해 두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예측불허의 미래를 위한 대비책이라고는 해도 한창
일할 나이인 30~40대가 할일 같지는 않아 보인다.

현대인의 히스테리를 보는 느낌이라고나할까.

미국의 링컨대통령은 법률가였지만 유언장 같은 것을 작성해 두지는
않았다.

미국인들가운데 늙어서도 유언장을 남기지않고 죽는 사람이 50%정도
된다고 한다.

"무릇 유언이라는 것은 80을 살고도 가을을 경험하지 못한 속배들이
하는 일"이라고 혹평했던 "청포도"의 시인 이육사가 이런 현실을
보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진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