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2년 영동 송탄 경기상호신용금고가 줄줄이 사고를 냈다.

일반 기업체같으면 "파산선고"를 받아야 마땅했을 터였다.

그러나 신용금고도 금융기관이었다.

경제논리에 따라 파산을 시키자니 선의의 예금자가 문제였다.

그래서 선택된게 공신력을 생명으로하는 은행. 만만한 국책은행인
주택(영동금고) 기업은행(송탄금고)과 지방은행인 경기은행(경기금고)이
이들 금고를 반강제적으로 떠맡았다.

지난해 대전국보금고와 논산제일금고도 역시 사고를 냈다.

정부의 해법은 92년과 다를게 없었다.

파산은 불가능하니 역시 은행등 금융기관에 인수시킨다는 것.그러나
문제는 엉뚱한데서 발생했다.

이번엔 은행들이 사고금고를 서로 떠맡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결국은 한일은행이 6개은행을 따돌리고 두 금고를 인수, 지금의
한일중부금고를 만들었다.

금고인수에대한 은행들의 자세는 2년만에 변했다.

주된 원인은 물론 금융환경의 변화다.

지난해는 금융전업그룹논의가 한창이었다.

은행들로선 어떻하든 자회사를 늘려야만 했다.

그래서 신용금고확보경쟁이 일었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해 내내 계속됐다.

매물로 나온 충북흥업금고 한신금고 부국.한성금고의 입찰설명회에
10여개 은행들이 몰려들었다.

이러다보니 은행들이 거느린 신용금고도 21개로 불어났다.

이중 지난 2년동안 은행을 주인으로 맞아들인 금고가 6개나 된다.

국내 전체 신용금고는 모두 2백36개.이중 10%가 은행소유다.

금융기관중 유일하게 개인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신용금고들도 이제는
은행들이 다수를 점하게된 것이다.

은행계 금고들은 다른 자회사들에 비해 영업실적이 비교적 양호하다.

우선은외형부터가 그렇다.

지난해말 현재 은행계금고들의 평균 총수신과 총여신은 각각 1천7백12억
9천만원과 1천5백21억8천만원.전체 평균(총수신 9백32억5천만원 총여신
8백86억6천만원)보다 배가까이 많다.

이익도 괜찮은 편이다.

지난 93회계년도(6월결산)에 21개 은행계 금고가 낸 당기순이익은 사당
평균 5억7천만원.2백36개 금고들의 사당 평균 8억2천만원엔 뒤지지만
사고금고가 많았던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실적이라는게 업계의 평가다.

이렇듯 은행계금고들의 실적이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은행이 주인이기
때문이다.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은행의 후광을 입고 있어서다.

업계 1위인 부국금고를 보자.이 회사는 지금은 금융기관 건설업체
제조업체들이 군침을 흘리 정도로 성장했다.

그런 이 회사도 지난 74년 거의 파산상태에서 국민은행에 반강제적으로
떠맡겨졌었다.

"부국금고란 말 앞엔 "국민은행출자회사"라는 말이 항상 따라 다닙니다"
는 국민은행의 설명이 바로 성장의 비결이다.

은행의 공신력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얘기다.

존립이 문제가 되던 금고들이 은행에 넘어가자마자 그럴듯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은행들이 1백억원이상의 종자돈을 쏟아붓는 것도 상당한 힘이다.

사고금고 인수당시 정부로부터 받은 혜택(장기저리자금지원.지점인가등)도
무시할수 없는건 물론이다.

그러나 내실은 외형에 미치지 못한다. 부국금고는 지점이 11개나 된다.
지점장 평균 총수신은 억원이다.

반면 지점이 1개인 사조금고(총수신 억원)의 지점당 평균은 억원에
달한다.

생산성면에선 뒤진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비약한다면 모은행의 후광이
없다면 어떻게 될지 모를 정도다.

이유는 간단하다.

은행들의 자세가 문제다. 그저 "금고를 자회사로 갖고 있다"고
만족하는게 은행들이다.

은행출장소 1개 만큼의 정성도 보이지 않고 있다.

기은금고는 인수한지 2년이 다 됐지만 아직 사장이 없다.

부사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고참부장급을 사장으로 보냈으면 하는게 기업은행의 눈치다.

그러나 가려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될데로 되라는 식으로 내버려두고 있다.

역시 책임질 주인이 없다는 문제로 귀착된다.

오는 4월부터는 개정된 신용금고법이 시행된다.

그렇게되면 신용금고도 "준은행"으로 거듭날수 있다는게 업계의
평가다.

은행들이 "준은행"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 나갈지 특히 주목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영춘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