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짓이오?"

"안돼! 안돼!"

옆에 앉았던 야마가타와 오쿠마가 후닥닥 뛰어일어나 군도를 뽑으려는
구로다의 팔을 재빨리 붙들어 제지했다.

그 바람에 만취가 된 구로다는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안되겠는데. 이 사람 먼저 집에 보내자구"

"그래야 되겠어" 두 사람이 구로다를 끌다시피 하고서 밖으로 나가자,

"저녀석 때문에 번번이 술자리가 이 모양이 된다니까.

기분 잡쳤네. 잡쳤어" 하고 이토가 투덜거렸다.

마차에 실려 집으로 돌아간 구로다는 비틀거리며 현관을 틀어서자 냅다
고함을 질렀다.

"세이코(세이자)! 뭘 하고 있는 거야? 어른이 돌아왔는데 얼른 나와서
마중을 하지 않고서."

"하이(예), 지금 나가요" 안에서 여자의 아리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로다의 아내인 세이코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스물세살이었다.

열세살때에 14세나 연장인 구로다에게 시집을 와서 결혼생활 십년째로
접어든 묘령의 부인이었다.

"아니,세이코! 내 목소리가 안들리나? 왜 빨리 안 나오는 거야! 응?"

"곧 나가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때 그녀는 욕실에서 머리를 감고 있었다.

한창 머리에 비누칠을 해서 벅벅 문지르고 있는데, 남편의 고함소리가
들려서 당황하여 후닥닥 머리를 아무렇게나 헹구어댔다.

요정에서 이토에게 주사를 부리다가 강제 퇴거를 당하듯 마차에 실려
집에 돌아온 터이라 가뜩이나 심사가 아직도 부글부글 끓고 있는 터인데,
마누라까지 얼른 대령을 안하니 더욱 울화통이 치밀어 구로다는 냅다
한쪽 발로 현관 바닥을 쾅! 쾅! 굴러대며 악을 쓰듯 외쳤다.

"도대체 이게 남편을 뭐로 아는 거야. 응? 앙!"

그제야 세이코가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쪼르르 달려나왔다.

"머리를 감고 있었다구요"

"머리를 왜 하필 지금 감고 있느냐 말이야. 내가 돌아올 시간에."

"하하하. 당신이 돌아올 시간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기다리다가
머리가 근지러워서 좀 감았지 뭐예요"

"아니 이년이 어디서 말대꾸야! 에잇 썅!"

구로다는 그만 쑥 군도를 잡아뽑아 냅다 세이코를 내리쳤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