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은 돈부리를 먹으며 그저 남정네를 향해 신그레 웃어 보였다.

그렇다는 뜻이었다.

"아, 그러시군요. 난슈 도노께서 이런 누추한 곳에 다 와주시다니, 정말
황송하고 고맙습니다"

"허허, 무슨 그런 말씀을." 부엌에서 아낙네는 그 말을 듣고 놀라 입이
살짝 벌어지고 있었다.

난슈. 그것은 사이고다카모리의 아호였다. 가고시마 사람들은 사이고를
그 성보다 아호로 곧잘 불렀다. 조경의 뜻이 담겨있는 것이었다.

사이고가 애견을 이끌고 멀리 산책을 나왔다가 낯선 음식점에 들렀던
것이다. 남정네는 사이고의 자리 가까이에 조심스레 앉았다. 그리고
물었다.

"난슈 도노,이번에 우리 일본이 조선국과 회담을 해서 이겼다지요?"

"이겼다. 허허허. 그렇지, 이긴 셈이지요" 회담에서 이겼다는 말이
무척 재미있다는 그런 표정이었다.

"왜 정벌을 안하고 회담을 했습니까? 무슨 회담이었는데요?"

"글쎄. 내가 어떻게 아오"

"히히. 난슈 도노께서 모르시다니요"

"난 농사꾼인데, 그런 걸 어떻게 아느냐 말이오"

"흐흐흐. 별말씀을 다."

"돈부리 맛이 아주 좋구려" 사이고는 말머리를 돌렸다.

"난슈 도노께서 좋다고 하시니 영광입니다"

"실제로 맛이 좋아요. 종종 먹으러 와야겠소"

"그러시다면 더욱 영광이죠"

"너도 맛이 좋지?" 개에게 하는 소리였다.

마치 그말을 알아듣기라도 한듯 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셈을 치르고,사이고가 개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자,남정네도 뒤따라
나갔고,부엌에 있던 아낙네도 쪼르르 따라 나갔다.

그리고 개를 앞세우고 걸어가는 사이고의 뒷모습을 향해 두 부부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난슈 도노,또 들러 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
난슈 도노." 하면서 대고 절을 해댔다.

애견과 함께 봄 오후의 들녘길을 건들건들 집으로 돌아가는 사이고는
겉으로 보기에는 유유자적해 보였지만,실상 심정은 밝지가 못하고
무거웠다.

그 음식점의 남정네가 꺼냈던 말이 가슴 속의 우울한 데를 또 건드렸던
것이다.

조선국과의 수호조약 체결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 사이고는
매우 착잡한 심경이었다.

집에 돌아간 사이고는 술상을 차려오게 하여 혼자서 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