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돈 <중앙대교수/법학> ####

11월20일자 한경논단에서 과기처장관을 지낸 정근모고등기술연구원장은
원전폐기물처분장소선정등 원자력과 관련된 여러 현안문제가 답보하고 있는
것은 현재의 원자력행정체계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즉 최고의 원자력정책기관인 원자력위원회는 이름뿐이며 과거에는 원자력
문제에 대하여 전문적식견이 없는 사람들에 의하여 정책이 결정되어 왔기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신뢰와 협조를 받지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이에대한 대안으로서 원자력위원회의 위원을 국회의 동의로서 임명
하도록 하고 특히 위원들을 명망과 신임을 갖춘 인사들을 중심으로 초당적
으로 구성하여 원자력에 관한 기본정책을 정하고 관련기관을 통합함독할
것을 제시했다.

안면도 사건을 책임지고서 장관직을 물러난 정박사의 이러한 주장은 물론
충정어린 것이다.

하지만 다음과같은 이유에서 문제해결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우리정부에는 관계장관과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원자력위원회
뿐 아니라 여러개 있으나 어느것 하나도 제대로 가능하는 것이 없다.

관련부처간의 협의이며 결정된 것을 채택하는 요식행위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점에서 정박사의 평가는 정확하다.

그러나 국회의 동의로서 원자력위원을 임명한다는 것은 미국과 같은 독립
규제위원회제도가 없는 우리나라의 법과 행정체계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둘째 이러한 위원회가 조직된다고 하더라도 이 명망과 신임을 갖춘 위원
으로 구성된 초당적인 원자력위원회는 국정자문위원회와 같은 원로원이 될
가능성이 많다.

더욱이 이러한 위원회가 관련기관을 통합감독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면 이에대한 대안을 제시하여 보고자 한다.

정박사의 지적대로 현재의 원자력정책은 국민들로부터 신뢰와 협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불신의 뿌리는 원자력정책결정의 비투명성에 있다고 생각된다.

단적으로 이야기해서 우리의 원자력정책은 "원자력친목회"라고 부를수
있는 과학기술자와 원전사업자, 그리고 소수의 고위정책결정자에 의하여서
이끌어져 왔다.

게다가 원자력행정이 주로 전문성을 강조하는 과학기술자들에 의하여
주도되어서 반핵단체와 지역주민을 이해하는 기본자세가 부족하였던 것이
아닌가 한다.

뿐만 아니라 국가의 미래가 좌우되는 이 문제에 대하여 국정의 최고책임자
인 대통령이 취하여 오고 있는 애매한 태도도 문제이다.

안면도 사건이 발생하자 장관을 해임하여 당장의 사태를 수습하였으나
더 이상의 아무런 대책을 취하지 않았다.

단지 과기처와 공보처가 합동으로 벌이는 홍보만 요란할 뿐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우선 원자력정책과 원자력규제행정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첫째로, 원자력정책은 대통령의 지시아래 관계부처를 중심으로 결정되고
집행되어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자문위원회를 청와대에
둘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원자력위원회는 차라리 폐지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둘째로, 원자력규제행정을 담당할 원자력규제위원회를 설치하여야 할
것이다.

원자력규제위원회는 과학기술처산하에 두되 위원의 임기를 보장하고
과학기술자 이외에도 경제학자와 법률가가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이 위원회가 현재의 안전기술원을 감독하도록 하여 규제행정의 독립성을
확보하도록 하며 특히 그 의사결정을 투명화하여 국민의 신뢰를 얻도록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1971년에 기존의 원자에너지위원회(AEC)를 원자력규제위원회(NRC)와
에너지개발국으로 구분하여 규제기능과 개발기능을 분리시켰다.

그리고 닉슨 대통령은 경제학자인 제임스 슈레징거 박사를 초대 원자력
규제위원회의 위원장에 임명하였는데 그는 원자력과학자가 아닌 최초의
원자력행정책임자이었다.

슈레징거는 방사오염이 있다고 비난되던 해변에서 가족과 함께 해수욕을
해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신뢰를 국민에게 심어준 일화가 있다.

원전에 대한 정책과 규제행정체제를 시급히 정비하여야 할 현시점에서
참고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