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데 이골이 난 사람" "성실한 성격에 쇳소리가 나는 걸 싫어하는
관료" "결심할때까지 시간이 걸리나 한번 결정한 것은 끝까지 밀고가는
사람" "윗분의 뜻을 재빨리 알아채 신속처리하는 인물" 홍재형 신임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을 한마디로 압축하는 말들이다.

지난해 전격실시됐던 금융실명제에서 "비밀"을 끝까지 지켜 실명제실시와
사후 마무리를 성공적으로 해낸 것도 그의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때부터 그는 김영삼대통령의 "신임"을 뒷심으로 각종 개혁조치를
시행했다.

2단계금리자유화를 실시했고 금기시됐던 외자도입법 외국환관리법
부가가치세 과세특례제도등의 폐지방침도 내놓았다.

국회에서 토지초과이득세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해도 "부동산투기
억제는 통치권 차원"이라는 말로 개정소신을 관철시켰다.

경제기획원과 상공자원부등 다른 경제부처에서 그를 "소리없는 개혁을
추진자"로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윗분의 뜻"을 잘 읽는 장점도 있다.

지난92년10월 금융관련 7개단체장을 경질할때 보였던 "신속성"이 그의
이같은 면모를 엿보게 한다.

그러나 홍부총리의 관료생활이 화려했던 것은 아니다. 이는 그의 경력을
보면 금세 나타난다.

외환국사무관 주영재무관 관세청조사국장 관세국장 해외협력위원회기획단
부단장 관세청장등.재무부의 "꽃"이라는 이재국에는 한번도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다만 1차관보만을 9개월가량 했을 뿐이다.

홍부총리가 재무부장관취임후 이재국의 간판을 내린 것도 이같은 그의
경력과 무관치 않다는 주위의 평이었다.

홍부총리의 성실성은 관세청장을 끝으로 관료생활을 "마감"한뒤
수출입은행장을 "좌천"당하면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수출입은행 발전을 위해 노력한 결과 홍부총리가 외환은행장으로
옮겼을때 수출입은행 노조가 "퇴임반대"시위를 벌이는 "이변"을
낳았다.

관료생활은 화려하지 못했으나 은행장으로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어려운 시절 자리에 탓하지 않았던 그의 성격이 부총리영예를 안게
했다는 얘기다.

홍부총리는 재무부장관시절 서류결재제도를 도입하고 차관보를 결재라인
에서 제외하는 등 내부개혁도 추진,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이같은 "독특한" 경력과 성격이 오히려 부작용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시끄럽게" 마련인 관계부처의 정책협의과정에서 "조정역"을 맡아야
하는 부총리역할에 어울리지 않을수도 있다는 얘기다.

소그룹으로 움직였던 재무부에서 보였던 "능력"이 기획원에선 통하지
않고 정치적 풍향에 따라 움직이는 "얼굴마담"역할로 끝날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그의 성격과는 다르게 대학시절 태권도부를 창설,유단자실력을
가질만큼 색다른 일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최근 들어선 태권도를 못하는 대신 탁구와 등산등으로 생활의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 홍찬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