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경제팀의 핵심 포스트에 임명된 박재윤재무부장관과 한이헌경제수석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두사람 모두 김영삼대통령의 민자당총재시절부터 경제특보와 경제보좌역
으로 측근중의 측근이었던 문민정부의 양대 경제실세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박장관과 한수석은 새정부 출범 직후부터 줄곧 치열한 경쟁을
벌여온 라이벌 관계에 있었던 데다 재무장관과 경제수석이 정책결정과정
에서 직접 맞닥뜨리는 자리여서 더욱 그렇다.

지금까지는 박재윤장관이 한발 앞서 나갔다.

한수석이 새정부 출범때 공정거래위원장으로 핵심을 비껴있던 반면
박장관은 경제수석으로 기선을 잡았다고 할수 있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을 총망라한 신경제정책을 박장관이 주도적으로
입안한 데서도 이를 읽을수 있다.

그러나 출발점에선 다소 처진감이 있었던 한수석은 공정거래위원장이란
경제경찰총수로서 입지를 살려 차근차근 위상을 높여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획원차관을 거쳐 이번에 경제수석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그간의 불리한
형세를 거의 만회했다는 것이다.

한수석의 기획원차관 시절 두 사람간에는 미묘한 갈등이 노출되기도
했다.

신경제추진회의의 준비작업이 청와대에서 기획원으로 넘어온게 대표적인
사례이다.

신경제추진회의 외에 별도로 추진됐던 경제국제화기획단회의가 한수석의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두 실세간의 경쟁심리를 엿볼수 있다.

두 사람은 업무 스타일면에서도 서로 비슷한 점이 많아 삐꺽거릴 소지가
적지않다. 추진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점이다.

자기확신이 너무 지나쳐서 한번 옳다고 판단하면 앞뒤 안재고 밀어부치는
"불도저형"이라는 것이다.

박장관이 수석 시절 경제부처 관리들로부터 융통성이 없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나 한수석이 과거 기획원에서 민자당으로 "쫓겨가다시피"한
것도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특히 한수석은 과거 기획국장시절 실명제와 토지공개념을 추진할때도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아 "적"을 많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두 실세의 지원그룹도 만만치 않다.

한수석이 경제부처내에 "추종자"가 많다면 박장관은 학계 금융계에
별도의 "자문그룹"이 있을 정도이다.

두 실세간의 경쟁에서 누가 우위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이들 지원그룹의
운명도 크게 달라질 공산이 크다.

<박영균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