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길이 고생길이다.

금번 추석 연휴기간동안 무려 2,800만명의 대이동이 예상된다고 한다.

고향으로 또는 휴양지로 민족대이동이 벌어질 것이다.

평상시에도 교통체증으로 신음하고 있는 전국의 도로망이 어떤 모습이
되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간다.

매년 그리고 일년에 몇번씩 겪는 일이다.

두세 시간이면 가던 길이 열시간이 걸리고 스무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고향길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이유는 뻔하다.

그동안 사회간접자본투자를 게을리 했기 때문이다.

자동차시대는 성큼성큼 다가오는데 우리의 도로시설은 제자리 걸음이었다.

그리고 한꺼번에 고향가는 사람들과 휴가가는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전국 인구의 반 가까이가 서울과 수도권에 살고 있으므로
서울을 빠져 나가고 들어오는데서 극심한 교통전쟁을 치룰수 밖에 없다.

물론 일시에 2,800만명을 수송할수 있는 도로시설과 철도시설을 갖춘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열시간 또는 스무시간씩 길바닥에 버리는
시간이 값어치가 얼마나 될까.

여기에 휘발유낭비, 매연에 따른 사회비용등을 합치면 그 손실은 가히
천문학적인 숫자다.

추석을 사흘연휴로 바꾼것도 일시에 몰리는 교통량을 분산처리하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연휴로 바뀌니까 가뜩이나 연휴가 없던 참이라 추석이 휴가철로
둔감해 버렸다.

그래서 상당수의 사람들은 고향길일 터이지만 여기에 휴가길도 섞여있고,
또 고향길이 곧 휴가길이기도 한 경우가 많다.

지난 60년대이후 우리는 개미처럼 열심히 일해 왔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근로자의 노동시간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휴가라는 말 자체가 사치였다.

그러나 지금은 여로모로 여유가 생겼다.

무엇보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달라졌다.

그들은 특히 가족지향적이고 레저지향적이다.

아끼고 저축하고 집장만하던 구세대와 다르다.

번만큼 쓰고 집보다 자동차를 먼저 산다.

오버타임은 사양한다.

자동차가 좀 밀린다고 여행 떠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또 80년대 말부터 우리의 근로조건이 화끈하게 달라졌다.

평균적으로 연간 휴일이 1백일이 넘는다.

격주 토요휴무제를 채택하고 있는 곳이 많은데 이곳의 실제 휴일을 훨씬
많다.

우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싱가포르나 대만에 비해 볼때 우리가 유급휴가일수
가 많고 주당 법정 근무시간도 44시간으로 우리가 적다.

다른 나라에 없는 월차휴가제도 있고 특별휴가제도 있다.

너무 빠른듯 싶은 주5일 근무제가 슬금슬금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이런 제도가 어디까지나 임금보전적이다.

휴가는 며칠 놀고는 나머지는 돈으로 받고 법정근무시간에 대한 오버타임
역시 돈으로 받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휴가 자체가 빛 좋은 개살구인 것이다.

지난 여름 가뭄으로 대통령이 휴가를 미루자 장관들이 어물거리고,
국과장이 눈치를 보았었다.

사회 전체가 이 모양이다.

휴가는 임금조전이 아니다.

쓰지도 못하는 유급휴가를 줄이고 내실을 기해야 한다.

쉬고 일하고 쉬고 일하고 하는 식의 휴일은 쓸모가 없다.

앞으로 휴가나 레저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국민소득이 1만달러에 이를 때까지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전에 놀자 풍조가 만연된다면 일어서는 우리경제가 다시 뒷걸음질 칠지도
모른다.

일본도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된 것은 92년이 지나고 부터이다.

그러나 무턱대고 억누를 일이 아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우리의 휴가제도를 선진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제를 고쳐야 한다.

우리 학제는 50년대 식이다.

우리사회는 점점 핵가족화하고 가족중심제로 바뀌고 있는데 유독 학제만은
옛날식이다.

어른들은 언제든지 휴가를 얻을수 있지만 아이들은 수업을 빠질수는 없다.

우선 아이들부터 토요일 수업에서 해방시켰으면 한다.

필요하면 어른들이 토요일 휴가를 얻어 연휴를 만들어 가족이 나들이를
할수도 있다.

옛날 난방비용도 제대로 없던 시절부터 시행해온 긴긴 겨울방학을 대폭
줄이자.

어른들은 연말정리와 새해계획으로 직장마다 바쁠 때이므로 아이들만
집에서 소일하게 마련이다.

대신 봄과 가을에 짧은 방학을 넣는다.

외국에서는 대개 부활절 브레이크, 추수감사절 브레이크가 있도 또 학제에
따라 쿼터 브레이크가 있다.

철따라 각자의 기호에 따라 가족과 함께 휴가를 즐길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단체생활을 익힌다는 명분아래 수학여행이 유행이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 자연을 답사하는 것도 중요한 경험이다.

그러면 여름 한철에 반짝하고 몰리는 휴가교통동 분산될 것이다.

꼭 구정연휴나, 여름휴가, 추석연휴에 휴가객이 몰릴 필요가 없다.

우리의 휴가제도가 학제도 경쟁력을 갖출수 있는 방향으로 틀이 잡혀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