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도경 <럭키금성경제연구소 경제연구 2실장>

김일성 사망이후 외부로 드러나지 않은 북한의 권력재편 움직임은 김정일
에로의 순조로운 승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중국과 러시아의
김정일체제에 대한 인정도 대세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막상 북한에서는
한달이 넘도록 국가주석과 당총비서라는 최고 정치지도자의 자리가 비어
있는등 납득이 가지않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같은 와중에서 북한당국이 해외인사들의 입을 통해 김정일체제의 안정을
애써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김정일체제가 뿌리를 내렸는지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예를들어 전세계일보사장 박보희씨의 북경기자회견,CNN의
평양발 보도,그리고 최근 우리측 상사주재원들이 접촉했던 북한무역회사간부
들의 발언등을 종합해 보면 북한당국이 김정일의 정권장악능력을 선전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음을 확인할수 있다.

중국 북경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나선 박보희씨는 "김정일의 손을
잡으니 후끈했고 목소리는 우렁차고 힘이 있었다"고 밝혔다. CNN은
평양에서 북한의 당간부들과 회견을 가진후 "김정일은 북한지도부를
굳게 통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제3국에서 북한과 교역및 임가공을
추진중인 우리측 상사주재원들의 전언에 따르면 북한측 무역회사간부들은
상담에 앞서 "김정일이 이미 정권기반을 굳혔으며,앞으로 북한을 이끌어
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누누이 강조했다고 한다.

북한으로부터 어떤 부탁이나 훈령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이들의 목소리가
한결같다는 점에서 오히려 무엇인가 감춰진 사실이 있지 않나 하는 인상을
강하게 주고있다. 왜냐하면 북한당국은 김일성이 죽기전까지 그의 건강과
통치능력에 대해 특별히 강조한 적이 없었다. 김일성의 건강이나 통치능력
모두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과 접촉한 인사들의 언행이 호소력을 지니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김정일의 정권장악능력을 의심하는 것은 무리일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북한경제는 식량난 에너지난 생필품난 외화난등에 시달린지 오래이며 이러한
상황은 이제 민간부문 뿐만 아니라 군수부문까지 파급되고 있다.

만약 김정일이 정권기반을 완전히 굳혔다 하더라도 빠른 시일내에 경제난을
해결하지 못할경우,혹은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한 대폭적인 개혁.개방과정
에서 주민통제에 실패할 경우 체제변혁을 원하는 새로운 세력에 의해 축출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당국이 해외인사들을 통해 김정일체제의 안정을 강조하고 있다
는 사실은 오히려 김정일체제가 쉽게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따른 불안감
의 표출일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90년대들어 남북관계와 관련된 일련의 과정은 남북합의서 마련,핵문제로
야기된 전쟁위기설,남북정상회담 합의,김일성사망과 같이 예측을 불허하는
특징을 보였다. 따라서 앞으로의 남북관계가 촌각을 다투며 급박하게 변할지
아니면 점진적으로 개선되어 통일에 이를지는 단정지어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흐름을 통해 볼때 예기치 않은 시점에서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보다 클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북한체제의 급변에 대비하여 보다 실질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할수 있다. 그렇지만 김일성 사망직후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던 북한의 장래와 남북통일에 대한 논의는 일견 호기심의 차원
에서 접근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민족의 장래에 대한 논의
는 호기심의 차원이 아니라 생존과 번영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도 예외일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