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에노모토의 자결은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그날 오후에 정식 항복
문서가 적장 구로다에게 전달되었고, 고료카쿠성에 백기가 올랐다.

오륙백명의 군사들은 비분강개하여 땅을 치며 통곡하기도 했다. 도주병들과
달리 그들은 끝까지 싸워 옥쇄를 하기로 각오한 사무라이들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총공격의 날짜를 늦추어가며 에노모토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쓴 보람이
있어 항복 문서를 받은 구로다는 너무나 흡족하여 그날 저녁 호음을 하며
승리를 자축했다.

마지막 총공격을 하지 않고 항복을 받은 것도 기뻤지만, 에노모토의 마음을
돌리게 된게 더욱 그에게는 보람이었던 것이다.

이튿날 아침 관군은 보무도 당당하게 고료카쿠에 입성했고, 에노모토를
비롯한 각료들과 군사들은 도열하여 관군을 맞았다. 관군의 맨 선두에
육군참모인 구로다와 해군참모인 마스다가 말을 타고 나란히 들어섰다.

쿵- 쿵- 하코다테항에서는 고데쓰마루를 비롯한 여러 전함들이 축포를
쏘아대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항복식이 거행되었는데, 에노모토로부터
항복의 예를 받고나자 구로다는 앉았던 의자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에노모토공, 정말 반갑소. 내가 구로다기요다카요"

"아, 구로다 도노..."

보료 위에 꿇어앉아 두 손을 바닥에 짚고 머리를 숙이고 있던 에노모토는
목이 메이는 듯한 소리를 하며 구로다를 쳐다보았다.

"자, 어서 일어나시구려"

구로다는 에노모토의 두 손을 덥석 잡아 일으켜 세웠다.

"정말 고맙소이다. 구로다 도노"

"무슨 말씀이오. 오히려 내가 에노모토공에게 감사를 표해야 될 일이외다"

"별말씀을...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염려 마시구려. 앞으로의 일은 나에게 맡겨놓으면 되오. 우리 한번 잘
해봅시다"

구로다가 에노모토의 두 손을 잡고 지그시 힘을 주자, 에노모토는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두 사람의 그런 광경을 보자 관군측이나 에노모토의 군사들이나 모두
어리둥절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승장과 패장의 만남이라기에는 너무나
우의가 넘치는 듯해서 어쩌면 옛 친우 사이가 아닌가 하고들 생각했다.

좀 묘한 기분들이기는 했으나, 어쨌든 모두 흐뭇한 표정들이었다.

그리하여 에소공화국은 다섯달만에 무너졌고, 마침내 도쿠가와 막부의
뿌리는 한개도 남김없이 깨끗이 뽑혀 버리고만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