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중략)/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세상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귀천")
우주의 근원과 죽음의 피안,인생의 비통한 현실을 간결한 시어로 노래해온
천상병씨가 그의 시처럼 28일 귀천했다.

천시인은 일본 히메지(희로)시에서 태어나 46년 귀국했다. 마산중
재학시절 김춘수시인에게 국어를 배웠고 5학년때 유치환씨의 추천으로
"문예"지에 데뷔,52년 추천이 완료돼 등단했다. 51년 서울대 상과대에
입학했다가 4학년 1학기를 마치고는 "시인이상의 욕심이 생기지
않아서"학교를 그만 두었다. 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돼 전기고문을 받고
고문후유증에 시달리다가 71년엔 행려병자로 오인돼 서울 응암동
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되기도 했다. 이때 소식이 끊긴 그가 사망한 것으로
체념한 동료 문인들이 유고시집 "새"를 발간하기도 했다. 살아있는 사람의
유고시집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생전의 천시인은 달관의 경지에서 빚어낸 시작품들 뿐 아니라 번잡한
세속과 집단적 편견에 맞서 벌인 기행으로도 유명했다. "걸인 시인""문단
3괴"(고은,김관식과 함께)"영원한 소년""떠돌이 시인""천상의 시인"등이
그의 천진난만한 동심을 사랑한 이들이 그에게 선사한 별호였다.

<권녕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