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차포(車包) 뗀 종교인 과세 유감
당초 취지는 국민 개세주의 실현이었다. 정부 수립 이후 세금의 사각지대로 남아온 종교인에게도 소득세를 내게 해 국민 모두가 세금을 내야 한다는 헌법의 정신을 살리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과정도 결과도 후퇴의 연속이다.

2015년 말 종교인 과세를 위한 소득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종교계 반발로 시행을 2년간 유예했다. 막상 시행이 다가오면서 올해 초부터 보수 개신교계가 앞장서서 또다시 2년 유예를 주장했다. 추가 유예론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자 과세 대상, 세무조사 범위 등의 완화를 요구했다. 이를 수용한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이 30일 입법예고된다.

과세대상·과세율 줄이고

개정안에 따르면 종교활동에 사용할 목적으로 받은 ‘종교활동비’는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종교활동비는 종교단체가 규약이나 의결기구의 의결 또는 승인에 따라 사용하는 비용이다. 불교의 수행지원비, 개신교의 목회활동비, 천주교의 성무활동비 등은 사적 용도가 아니라 종교 활동에 쓰는 비용이므로 개인 소득에 포함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이 비용을 얼마나 어디에 쓰는지 해당 종교단체 외에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개정안은 급여 등을 기록한 종교인 회계와 종교활동 비용 등을 기록한 종교단체 회계를 따로 작성하고 종교단체 회계는 세무조사를 할 수 없도록 했다. 용도가 엄격히 제한되고 국세청이 사용내역을 낱낱이 들여다보는 기업이나 단체의 법인카드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그러니 종교단체가 월급을 줄이고 활동비를 늘린다고 해도 막을 길이 없다. 또하나의 사각지대다.

과세 대상인 종교인 소득 범위를 소속 종교단체로부터 받는 소득으로만 제한한 것도 문제다. 승려, 목사, 신부가 다른 사찰이나 교회, 성당, 기관 등에서 설법, 설교 등을 하고 받는 사례비는 소득에서 제외된다. 신자들이 개별적으로 건네는 사례비도 과세 대상에서 빠진다.

종교가 성스럽기 위해서는

개정 소득세법은 애초부터 종교인은 일반 근로자에 비해 세 부담이 적게 해놨다. 근로소득 대신 기타소득으로 신고하면 소득에 따라 30~80%를 필요경비로 인정받을 수 있어서다. 기획재정부가 예시한 간이세액표를 보면 4인 가구 기준 연소득 5000만원(월 417만원)인 종교인이 내는 원천징수액은 월 5만730원으로 일반 근로자의 절반 수준이다. 여기에다 과세 대상 소득 범위를 줄였으니 장기판으로 치면 차(車)도 떼고 포(包)도 뗀 셈이다.

종교인 납세로 세수가 늘 것이라 기대한 사람은 거의 없다. 면세점 이하 종교인이 허다한 게 현실이다. 하지만 지나친 후퇴로 국민 개세주의 명분이 크게 퇴색했다. 1962년 이낙선 당시 국세청장이 성직자 납세론을 꺼낸 이후 종교인 과세가 번번이 좌절된 것은 종교계의 반발, 즉 힘에 밀려서다. 유력 정치인까지 가세한 그 힘이 법 시행을 2년 유예시켰고, 내용을 후퇴시켰다. 준비에 소홀했던 정부 탓도 있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종교단체는 성역 내지 특수한 영역이라는 일부 종교인의 인식과 태도다. 종교는 성스럽지만 종교인 스스로 자신들을 성스럽게, 특별하게 봐달라고 하는 요구는 납득하기 어렵다. 청빈한 가운데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종교단체와 종교인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종교는 별천지가 아니라 사회의 일부다. 모든 것이 투명하고 평평해진 시대다. 종교계도 사회의 보편적인 기준을 받아들여야 성스러움을 유지할 수 있다. 성(聖)과 속(俗)은 둘이 아니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