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가 측근과 통화하면서 “컴퓨터 한 방이면 (최순실과 관련된 모든 것을) 터뜨릴 수 있다”고 말하는 등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를 기획하면서 컴퓨터를 여러 차례 언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컴퓨터가 사태를 촉발시킨 태블릿PC를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21일 ‘고영태 녹음파일’ 일부를 분석한 결과 고씨와 측근은 앞서 자신들이 기획한 ‘사익추구 계획’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언론을 이용, 최씨의 또 다른 측근 라인인 차은택 감독과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측을 공격하기로 계획했다. 이 과정에서 ‘컴퓨터’를 이용해 최씨까지 ‘한 방’에 보낼 계획을 짠 것으로 드러났다.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은 이 같은 정황이 고씨가 앞서 측근과의 통화에서 특정 정치세력과 결탁해 “(정치적으로) 박근혜(대통령)를 죽이자”고 모의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실행한 대목이라고 주장했다.

녹음파일에 따르면 이들은 모 언론사 기자 A씨와 ‘협력’하자는 계획을 짰다. 이 과정에서 컴퓨터 내용 폭로 계획이 구체화된다. 고영태 씨는 이 언론사가 차은택 감독의 늘품체조 관련 의혹을 제기한 이후인 지난해 7월11일 김수현 전 대표와의 통화에서 “좀 더 강한 거 나왔을 때 그때 한꺼번에 터뜨리고 싶다”며 “그래야지 한방에 죽일 수 있다. 이렇게 찔끔찔끔 흘려봤자 도망갈 기회(만 준다)”라고 했다.

고씨는 이어 “지금 더 큰 게 터뜨릴 수가 있어”라며 “그냥 컴퓨터 한방만 터뜨릴 수 있어”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은 이와 관련,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가 이른바 ‘최순실 태블릿PC’로부터 시작된 만큼 이 컴퓨터가 결국 태블릿PC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고씨 측근이 ‘컴퓨터’를 언급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7월4일 김 전 대표는 류상영 전 더블루K 부장과의 통화에서 “영태형이 ‘그거(최씨 의상실 폐쇄회로TV 영상) 뽑아가지고 컴퓨터에 넣어놨는데, 컴퓨터 다 가져간 게 수현이다’고 (A기자에게) 얘기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녹음파일에는 고씨와 측근들이 ‘컴퓨터 파일’을 준비한 뒤 그중 일부 내용을 지난해 6월 중순께 A기자에게 전달한 정황이 드러나 있다. 해당 파일에는 김종 전 차관과 관련된 각종 의혹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6월20일 A기자가 김 전 대표와의 9분여 통화에서 김 전 대표로부터 건네받은 파일의 구체적 내용을 묻는 장면도 나온다.

또 복수의 녹음파일에 따르면 고씨와 측근들은 차 감독과 김 전 차관을 모두 무너뜨릴 계획을 짰다. 이들이 소장이라 부르는 최씨가 자신들이 아니라 차 감독과 김 전 차관 등에게 더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자신들이 ‘예상’ 등 별도의 법인과 각종 사업 계획을 통해 짜둔 사업구조가 와해될 것을 우려했다.

▶2월15일자 A1면 참조

고씨와 측근들이 계획을 실행한 이후 ‘역풍’에 대비하자는 모의 내용도 나왔다. 지난해 7월10일 고씨는 김 전 대표와의 통화에서 “A기자는 뭐든지 까면 끝이지만 이 사람은 다치면 안 되니까 최대한 조심해서 해야지”라고 했다. 김 전 대표는 이에 “그 사람은 정말 열심히 일한 것으로 해 가지고 차 감독한테 뒤집어씌우면 된다고 본다”며 “(컴퓨터가 문제되면) 중간에 누가 가져가서 오픈한 것으로 해서 어찌됐든 (A기자는) 최대한 피해자로 만들면 된다”고 했다.

자신들이 넘긴 자료가 문제되더라도 중간에 누군가 가져가 공개한 것으로 하고 자신들과 그 자료를 가져간 언론인은 피해자로 꾸밀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 측 관계자는 “녹음파일을 보면 고영태 일당은 자신들이 보기에 차 감독이나 김 전 차관이 최씨와의 친분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권을 가져간다고 보고 구체적 모의를 계획했다”며 “이들이 국정농단 게이트를 모의하면서 만든 ‘컴퓨터’가 ‘최순실 태블릿PC’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