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을 폭로한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와 그의 측근이 K스포츠재단 자금을 자신들이 설립한 별도 법인으로 빼돌리려 한 정황이 드러났다.
[단독] '비밀회사' 세운 고영태 "최순실 씨 없어지면 우리 사업…기부금 빼돌리자"
14일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고영태 녹음파일’ 중 일부를 분석한 결과 고씨와 김수현 전 고원기획 대표, 류상영 전 더블루K 부장, 박헌영 전 K스포츠재단 과장 등은 (주)예상이라는 법인을 세워 사익을 추구하려 한 사실이 확인됐다. 현직 검사를 매수해 자신들의 방패막이로 삼는 내용을 모의하고 현 정권 이후의 생존 계획까지 마련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영태 녹음파일은 김 전 대표가 자동 녹음 앱(응용프로그램)을 통해 저장해둔 녹음파일 2391개다. 박근혜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고씨와 측근이 박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최순실 씨의 권력을 이용해 최씨 모르게 자신들만의 사업 계획을 꾸민 것으로 보고 있다. 박 대통령은 고씨와 측근이 만든 ‘큰 판’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탄핵 심판은 부당하다고 대리인단은 주장했다.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의 대화 내용이 녹음된 이른바 ‘고영태 파일’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국회 소추위원단 측과 박 대통령 대리인단이 녹취파일을 서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거로 활용하기 위해 벌이는 ‘두뇌싸움’이 치열하다.

선제공격은 국회 측이 했다. 14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심판 13차 공개변론에서 “검찰이 제출한 녹취록 29개를 증거로 채택해달라”고 신청한 것. 헌재는 이를 받아들였다. 국회 측은 녹취록을 제외한 2391개 녹음파일에 대해서는 “소추 사유와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통령 측은 녹음파일이 탄핵정국의 판세를 뒤집을 만큼의 결정적 증거가 될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비밀리에 사익 추구한 高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고영태 파일’을 보면 고씨와 측근들은 자신들이 설립한 회사 (주)예상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려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것으로 나타났다. 최순실 씨가 K스포츠재단과 더블루K를 통해 각종 사업을 진행하려 한 반면 고씨와 측근들은 그 사이에 ‘예상’을 끼워넣어 후일을 도모하려고 했다.

‘예상’은 고씨의 한국체육대(한체대) 2년 후배인 류상영 전 더블루K 부장이 실질적 대표로 있는 회사다. 스포츠 행사와 관련한 기획 및 대행 업무를 맡는다는 명분으로 지난해 1월21일 류 전 부장 부인 명의로 설립했다. 사무실은 서울 청담동 더블루K에서 걸어서 10여분 거리에 있다. 고씨와 측근들이 쉽게 오갈 수 있는 곳에 사무실을 둔 것이다.

사정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최씨는 ‘예상’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박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최씨의 권력을 이용해 겉으로는 최씨를 따르는 척하면서 ‘딴주머니’를 차려했다는 게 박 대통령 대리인단 측의 주장이다.

‘예상’을 통해 수익을 내려던 고영태-류상영-박헌영 등 한체대 라인은 구체적 계획도 논의했다. 고씨의 비서 역할을 한 김수현 전 고원기획 대표는 지난해 2월29일 박헌영 전 K스포츠재단 과장과의 통화에서 향후 수익 구조를 논의하며 “K스포츠재단이 기부금을 받아 그 돈을 더블루K와 예상으로 내려보내 그 안에서 수익을 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해 1월18일 고씨와의 통화에서는 구체적인 수익 분배 방식을 협의하기도 했다.

김 전 대표는 “(예상의 대표인) 류 대표가 가이드러너(장애인 올림픽에서 시각장애인 육상선수가 잘 달릴 수 있도록 함께 손을 잡고 이끌어주는 도우미)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판권을 갖고 있으면 나중에 사용료를 받고 이걸 우리끼리 나눠 가질 수 있다”며 “형(고씨)이 원하는 사람을 넣어두면 소장(최순실)이 없어져도 우리 것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만들자는 이야기”라고 했다.

◆“崔 없으면 VIP 아무 것도 못해”

녹음파일과는 별개로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입수한 ‘고영태 녹취록’에는 김 전 대표가 2015년 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고씨, 류 대표 등과 나눈 대화가 담겨 있다. 녹취록에서 고씨는 “VIP(대통령)는 이 사람(최순실)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 연설문 토씨 하나, 무슨 옷을 입어야 하고…”라고 말했다.

고씨의 측근들이 “고영태와 최순실의 관계를 이용해 36억원 규모의 관급공사를 관철시켜 나눠 먹겠다”고 하는 대화 내용도 들어 있다. 최씨의 국정농단이 수면 위로 드러날 가능성이 보일 때는 “대통령은 뭐야, 소장을 지키기 위해 정책수석이 책임지고 날아가는 걸로 끝낼 거야, 아마…”라고 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퇴임 후 최씨 등과 함께 거주할 집을 짓기 위해 나눈 대화도 있다.

고윤상/성수영/박상용/구은서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