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암살과 피살
‘독일서 16일 한미·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김정남 암살 논의’ 어제 아침 한 통신사가 송고한 기사 제목이다. 제목만 보면 섬뜩하기도 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하다. 한미 혹은 한미일 세 나라가 김정남을 암살하기 위해 논의한다니 섬뜩한 것이고 이미 고인이 된 김정남을 다시 암살하기 위해 논의한다니 어리둥절한 것이다.

정확한 표현은 ‘김정남 피살 관련 논의’였을 것이다. 제목을 압축하기 위해 ‘관련’을 뺀 것은 그렇다 칠 수도 있다. 하지만 피살을 암살로 쓴 것은 명백한 오류요 실수다. 암살(暗殺)의 사전적 정의는 ‘남몰래 사람을 죽임’이다. 피살(被殺)은 ‘죽임을 당함’이다. 일부에서 ‘김정남 독살’로 제목을 뽑은 것도 비슷한 오류다. 독살은 누구를 독을 이용해 살해한 것이니 ‘김정남 독살돼’ 정도가 옳은 표현이다.

근래 들어 한자를 배우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니 원래의 말뜻을 몰라 생긴 실수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우리말에 수동태나 피동태가 거의 없는 점 역시 이런 혼란을 가져온 데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예는 또 있다. 2010년 북한이 대연평도를 향해 포격을 가한 소위 연평도 도발도 마찬가지다. 보통 연평도 ‘포격(砲擊)’ 사건이라고들 쓰고 말하지만 옳은 표현인지는 의문이다. 포격은 포를 쏘는 측의 관점에서 서술한 것이다. 북한 측에서는 자신들이 공격을 했기 때문에 연평도 ‘포격’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공격을 당한 우리 측에서는 연평도 ‘피격(被擊)’이라고 해야 옳다.

언론에서 흔히 혼동하는 또 다른 예는 서류나 원서 접수라는 표현이다. ‘대학 원서 접수 마감’ 같은 표현이 별 생각 없이 종종 쓰인다. 하지만 접수는 원서나 서류를 받는 대학이나 관공서 등의 입장에서 써야 한다. 응시생이나 해당 서류를 내는 사람은 ‘접수’가 아니라 ‘제출’을 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쓰이는 “서류 접수했니?”라는 표현도 틀린 것이다. “서류 제출했니?”가 맞다.

심지어 언론들이 고저장단(高低長短)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다리 길이가 최장 몇m라고 해야 할 것을 최대 몇m라고 하는 식이다. ‘과반수를 넘어’라는 실수도 심심치 않게 반복된다. ‘과(過)’반수 자체가 이미 반을 넘었다는 뜻인데도 말이다.

1970년대만 해도 신문은 훌륭한 한자 공부 교재였다. 그러던 것이 한글 전용이 되면서 이제는 신문조차 틀린 말을 쏟아낸다. 우리말에서 한자어 비중은 약 70%다. 한자는 정확한 뜻을 압축해 전달하는 장점이 있다. 그런 한자를 계속 외면해 이렇게 혼란을 부추겨도 좋은지 모르겠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