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형주가 오를 것이란 ‘고집’을 끝내 버리지 못한 게 아쉽네요.”(전경대 맥쿼리투신운용 주식운용팀장)

2016년 세밑. 요즘 자산운용사들은 한 해 성과 정리와 함께 내년 투자계획 수립에 분주하다. 연말이면 늘 해온 일이지만 2011년 이후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올해엔 펀드매니저의 탄식과 반성이 이어지고 있다. 매년 ‘알파수익(초과수익)’을 내며 이름을 날리던 국내 최고 투자전문가들의 ‘반성문’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펀드매니저들의 '병신년(丙申年) 반성문'…"왜 중소형주 집착했던가"
◆쏟아지는 탄식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524개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5.14%를 기록했다. 2011년(-12.11%) 이후 5년 만에 가장 낮은 성과다. 2011년엔 유럽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 주식시장이 휘청거렸지만 올해엔 눈에 띄는 경제 위기도 없었다. 이 때문에 펀드매니저들은 거액의 투자금을 맡긴 기관투자가와 자산가로부터 수익률 하락 원인을 설명해달라는 문의를 받으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가치주 펀드로 유명한 신영자산운용의 허남권 부사장은 부진한 원인으로 ‘삼성전자의 독주’를 꼽았다. 허 부사장은 “한국 증시가 박스권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가 이렇게 큰 폭으로 오를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잠시 머뭇거리는 동안 추격 매수가 어려운 수준까지 주가가 올랐다”고 아쉬워했다. 삼성전자는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의 20% 안팎(우선주 포함)을 차지하지만 신영자산운용은 이 비중이 10% 안팎이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후폭풍을 과소평가했다는 반성도 나왔다. 사드 등 정치적 이슈로 떨어진 주가는 곧 회복된다는 게 업계 정설이었지만 올해엔 관련 기업의 실적이 적잖은 타격을 봤다. 대신자산운용의 팀장급 펀드매니저는 “외교 문제로 중국인 관광객이 줄었고 동시에 면세점과 화장품업체의 성장률이 급감했다”고 분석했다.

유가 반등으로 생긴 투자 기회를 놓쳤다는 분석도 이어졌다. 은행 계열 자산운용사의 투자운용본부장(CIO)은 “국제 유가가 배럴당 28달러에서 반등을 시작했을 때 중공업, 철강 등 산업재 투자 비중을 늘렸어야 했다”며 “그동안 ‘시장이 공포에 질렸을 때가 투자 적기’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정작 내가 두려움에 휩싸여 머뭇거렸다”고 토로했다.

◆중소형주여! 내년에 다시 한 번!

일부 대형주와 테마주에 쏠린 시장 상황에 대한 불만도 나왔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국민연금이 주식운용 전략을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위주로 바꾸면서 수급이 완전히 꼬였다”며 “실적이 아니라 수급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장에선 미국 구글이나 아마존처럼 ‘스타 종목’이 나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존 리 대표는 수급 불균형 상황이 1년 이상 이어지기 힘들기 때문에 내년엔 대형주와 중소형주의 격차가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 주식시장에 대해선 올해 빛을 보지 못한 저평가 중소형주의 반등을 예상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은 “저금리 정책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선 성장주의 매력이 떨어진다”며 “대신 기업의 성장률보다 현재 주가가 저평가된 중소형 가치주가 주목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정택 동부자산운용 리서치팀장은 내년 주가가 현 수준보다 한 단계 올라설 것으로 전망했다. 황 팀장은 “글로벌 자산이 채권에서 주식으로 이동하는 ‘소프트 로테이션’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며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실적 개선이 예상되는 정보기술(IT) 업종을 중심으로 상승장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