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페리클레스의 리더십
투키디데스는 서양에서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에 대해 언급한 최초의 역사가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기원전 431년 발발해 30년 가까이 이어진 펠로폰네소스동맹(스파르타 주도)과 델로스동맹(아테네 주도) 간 전쟁이다. 투키디데스는 군사력, 특히 육군의 군사력이 스파르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던 아테네가 어떻게 전쟁에 나서게 됐는지를 지도자의 리더십을 통해 풀어 나갔다.

투키디데스가 주목한 인물은 아테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였다.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침공해 벌어진 1차 전쟁에서 아테네의 많은 젊은이가 전사했다. 전쟁을 그만두고 협상이나 항복을 하자는 여론이 높아졌다. 하지만 페리클레스는 장례식 연설에서 “행복은 자유에 있고, 자유는 용기에서 나옵니다. 전쟁의 위험 앞에서 망설여서는 안 됩니다. 자긍심을 가진 사람은 용감하게 싸우다가 죽는 것이 낫습니다.”며 아테네인들의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페리클레스는 자신이 궁지에 몰린 아테네를 이끌 지도자임을 부각시켰다. “자식의 죽음으로 여러분은 나에게 화를 내지만 나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는 식견이 있고, 본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조국을 사랑하고, 재물에 초연한 사람이라고 자부합니다.”

투키디데스는 페리클레스가 꼽은 식견(판단력과 통찰력), 설명할 수 있는 능력(소통 능력), 애국심, 청렴 등을 아테네인들이 인정했기에 그를 따라 전쟁에 임했다고 설명한다. 이 네 가지 덕목은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로 처음으로 서양사에 기술됐다.

‘최순실 게이트’로 대다수 국민을 참담하게 만든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 네 가지 덕목을 적용해 보면 어떤 평가가 나올까. 먼저 식견. 각종 현안 문건을 최순실에게 건네 검토하게 하고, “최 선생님(최순실)에게 컨펌받았나요”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미뤄 봤을 때 박 대통령은 식견 부족을 스스로 드러냈다. 자신의 생각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없어 보인다. 여당은 물론 총리, 장관, 청와대 수석들을 제대로 대면조차 하지 않아 ‘불통 대통령’으로 불리는 그다. 애국심은 평가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애국심보다 더 우선하는 가치들을 갖고 있는 듯하다. 검찰 앞에서 자신만을 지키려 애쓰는 모습이 단적인 사례다.

청렴 또한 마찬가지다. 청렴은 본인에게만 적용되는 덕목이 아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재물욕에서도 완전히 벗어나야 청렴하다고 말할 수 있다. 검찰은 박 대통령이 최순실 관련 회사가 여러 수주를 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공범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국민은 늦어도 내년 말에는 새로운 국가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대통령 탄핵 등이 빨리 추진된다면 그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 박 대통령을 국가 지도자로 뽑은 것은 결과적으로 불행이요, 국민의 잘못이다. 페리클레스의 리더십이 2400년이 지난 현재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많은 것을 말해 주는, 여전히 유효한 덕목으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당장 다음 대통령 선거부터 국가 지도자가 될 만한지 아닌지 판단 기준으로 삼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박준동 산업부 차장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