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언각비] 국감장으로 간 '사랑 논란'
국감(국정감사)의 계절이 돌아왔다. 매년 이맘때면 국회는 정부 부처 전반에 걸쳐 감사를 벌인다. 엄숙한 현장이지만 굵직한 이슈만 다루는 게 아니다. 우리말도 ‘단골메뉴’ 중 하나로 올라 공방이 벌어진다.

2014년엔 ‘사랑’ 뜻풀이를 놓고 국립국어원장이 곤욕을 치렀다. “우리말은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는데, 국어원이 시대에 역행하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정의당 J의원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발단은 이태 전 국어원에서 사랑의 정의를 바꾼 데서 비롯됐다.

애초 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1999년)은 사랑을 ‘이성의 상대에게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으로 풀이했다. 일각에서 ‘성(性)소수자 차별을 조장하는 표현’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국어원은 2012년 11월 이를 받아들여 인터넷판에서 사랑을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로 바꾸었다. ‘이성의 상대’를 ‘어떤 상대’로 바꿔 성 중립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번에는 보수단체들이 들고일어났다. 동성애를 옹호하는 표현을 썼다는 게 요지였다. 2014년 1월 국어원은 사랑 뜻풀이에 다시 손을 댔다.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남녀’라는 표현을 되살렸다. ‘연애’의 풀이 역시 애초 ‘남녀’를 주체로 하던 데서 ‘연인 관계인 두 사람’으로 바꾸었다가 지금은 다시 ‘남녀’로 돌아왔다.

띄어쓰기를 별것 아닌 걸로 여기다가 큰코다친 경우도 있다. 1999년 9월17일 “경찰이 휴대폰 감청기를 갖고 있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다. “디지털 감청은 불가능하다”고 해왔던 경찰청이 발칵 뒤집혔다. 조사 결과 당시 한나라당 L의원 질의서에 ‘휴대용전화감청기’라고 쓴 부분이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휴대용(휴대할 수 있는) 전화감청기’로 해석한 외사국은 ‘있다’고 답신했다. 반면에 ‘휴대용전화(휴대폰) 감청기’로 해석한 다른 국에선 ‘없다’고 했다. 질의서를 잘못 해독한 외사국 직원 다섯 명이 줄줄이 징계를 받았다. 사소한 실수 하나가 치명적인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실패를 불러온 사례다.

국감에서 벌어지는 ‘우리말 논쟁’은 국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커졌음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론 정치권에서 국감자료로 다룰 만큼 우리말 오용이 심각하다는 뜻도 된다. 오는 26일부터 열릴 올해 국감에서는 어떤 게 도마에 오를지 지켜볼 일이다.

홍성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