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깨우는 한시 (4)] 끽다음주유일생(喫茶飮酒遺一生) 내왕풍류종차시(來往風流從此始)
서울 종로에는 찻집이 많다. 더불어 풍류객의 발걸음도 잦다. ‘오설록’과 ‘공차(貢茶)’는 나름 개성 있는 퓨전차로 젊은이까지 끌어당긴다. 어느 중국차 전문점은 실내에 칸막이 삼아 설치한 유리판에 색을 넣고 무늬를 이용해 이 글을 원문으로 새겼다. 풍류를 안다면 우리 가게로 오라는 광고까지 겸했다.

이 시는 고려 이규보 거사(1168~1241년, 호:백운)의 유다시(孺茶詩) 일부다. 엄청 길지만 두 줄만 남기고 아래위를 쓱 잘랐다. 14자가 고갱이인지라 크게 문제될 것도 없다. 아무리 좋은 시라고 할지라도 이제 긴 시는 보기만 해도 숨이 차다. 2행으로 줄이니 외우기도 쉽고 남에게 전하기도 좋다. 성질 급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에는 짧은 글이 대세다. 하기야 오래전부터 선시(禪時)와 일본 하이쿠(徘句)는 압축 시가 어떤 것인지를 이미 보여준 바 있다.

900여년 전 어느 날 노규(老珪)선사는 어린 찻잎으로 만든 조아차(早芽茶)를 시음하는 다연을 베풀었다. 귀한 차를 대접받은 백운거사는 이 시로써 답례했다. 거문고와 술과 글을 좋아해 ‘삼혹호(三酷好)선생’이라는 별명답게 일생에 남길 것은 차와 술 먹는 일뿐이라며 풍류를 즐겼다. 다례(茶禮)마저도 ‘차례’라고 읽는다면 차가 더러 술로 바뀌기도 했다.

이규보의 벼슬살이 체취를 해인사에서 만났다. 다실이 아니라 장경판전에서다. 팔만대장경을 조성할 무렵 몽골 침략 전후 사정을 기록한 군신기고문(君臣祈告文)의 필자인 까닭이다. 통로에 걸어놓은 한글번역문이 당신을 대신해 문화해설사 노릇을 하고 있다. 내친김에 대장경을 판각했다는 강화도 성지를 찾아가면서 당신 무덤까지 들렀던 기억도 이제 아련하다.

원철 < 스님(조계종 포교연구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