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청주시
1990년대 청주시
삼한시대 마한의 땅이었던 청주는 삼국시대에는 상당현으로 불렸다. 삼국시대엔 소백산맥을 넘어가는 관문인 죽령과 추풍령이 있는 청주를 얻기 위한 전투가 치열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군사적·지리적 중요성에 주목해 청주를 지금의 도청 격인 5소경 중 하나인 서원경으로 승격해 지방행정의 중심지로 삼았다.

‘맑은 고을’이라는 뜻의 청주(淸州)라는 지명은 고려 태조 23년인 940년에 붙여졌다. 태조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하자 궁예를 지지했던 청주인들은 곳곳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1960년대 청주 무심천
1960년대 청주 무심천
태조가 죽기 직전 후대 왕들에게 남긴 훈요십조(訓要十條) 중 제8조인 ‘차현(車峴) 이남 사람은 등용하지 말라’는 문장에서 ‘차현 이남’은 청주를 뜻한다는 설이 유력하다. 반란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염원을 담아 ‘맑은 고을’이라는 지명을 붙였다는 설도 전해진다.

고려시대까지 군사적·지리적 요충지였던 청주는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수운(水運)이 발달한 인근 충주가 교통 요지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1905년 청주를 지나는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중부권 교통 요충지로서의 위상을 되찾았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청주시는 청주부와 청원군으로 분리됐고, 청주부는 1949년 청주시로 승격됐다.

1936년 청주시
1936년 청주시
청주시와 청원군이 분리된 지 63년 만인 2009년 두 지방자치단체의 통합 논의가 시작됐다. 3년 후인 2012년 4월 두 지자체 단체장들이 통합추진 합의문에 서명했고, 같은 해 6월 치러진 주민투표에서 79%의 찬성표가 나왔다. 2014년 7월 분리 68년 만에 ‘통합 청주시’가 출범하면서 중부권의 핵심 도시로 발돋움했다.

청주=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