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홍익대학교 인근에 있는 비건(Vegan) 빵집 '더브레드블루'. 이곳에서는 빵을 만들 때 우유, 계란, 버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 사진= 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서울 홍익대학교 인근에 있는 비건(Vegan) 빵집 '더브레드블루'. 이곳에서는 빵을 만들 때 우유, 계란, 버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 사진= 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밥 대신 빵. 우리는 지금 '빵의 시대'를 살고 있다. 주변엔 빵에 대한 관심을 넘어 직접 빵집을 차리겠다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빵집은 도처에 널려 있지만 어떤 빵집을 어떻게 차려야 할지 궁금한 게 많다. 셰프만의 개성으로 '골리앗'을 넘어뜨린 전국 방방곳곳 '작은 빵집' 사장님들의 성공 방정식. [노정동의 빵집이야기]에서 그 성공 법칙을 소개한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정문을 등지고 우측 도로를 따라가다보면 미술학원들이 몰려 있는 서교동 '미술학원 길(路)'이 있다. 이 인근에는 전국에 있는 비건(Vegan·엄격한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성지(聖地)로 꼽히는 '더브레드블루' 베이커리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 빵들은 보통 빵에 포함되는 3가지가 없다. 우유, 계란, 버터다. 우유 대신 특별 주문한 두유를 쓴다. 마트에서 파는 달달한 두유가 아니라 거의 콩물에 가까운 두유를 따로 준비한다. 계란 대신 콩에서 추출한 분리대두단백질을 넣고, 버터 대신 식물성버터를 사용한다. 식물성버터의 트랜스지방이 사회적 논란으로 떠오르자 아예 이마저도 제거한 버터를 직접 만들었다.

일반 제빵사들에게 우유, 계란, 버터란 밀가루, 소금 처럼 빵에서 없어서는 안될 재료로 '추앙' 받아왔다. 보통의 베이커리에 들어가서 우유, 계란, 버터가 함유되지 않은 빵을 찾는다면 소비자는 오직 바게뜨 빵만을 집어들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만큼 이들 재료는 밀가루와 이질감 없이 어울리는 빵의 주재료였다.

이 빵집을 운영하고 있는 신성철 더브레드블루 총괄이사(42). 그는 어떠한 생각으로 이 같은 빵집을 열게 됐을까.

"우유와 계란에 알러지와 아토피 반응이 있는 아이들도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들고자 했던 게 원래 취지였습니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80여가지 빵, 케익, 쿠키 등에는 동물성 재료가 단 1g도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채식주의자들이 많이 찾아오는 것이지요. 특히 강도 높은 채식을 하는 고객들이 수소문해서 많이 찾아옵니다."

채식주의는 보통 신체적·도덕적 이유로 육류·생선류를 먹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중에서도 우유와 유제품, 가죽처럼 동물에서 나온 부산물들도 전혀 먹거나 사용하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를 비건주의(Veganism)라고 한다. 이들은 심지어 꿀도 먹지 않는다. 건강 증진이나 생명 보호 차원을 넘어 동물의 생태를 자연 그대로 보호하겠다는 생각에 따른 행동이다.

국내 채식주의자 인구는 약 5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 수준이다. 영국 비건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 비건 인구는 약 30만명으로 추정된다. 스웨덴 동물권리협회는 스웨덴 전체 국민의 약 10%가 본인 스스로를 비건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독일도 20~30대 인구의 약 25%가 자신을 비건 혹은 약한 정도의 채식주의자(Pesco·해산물까지 허용) 정도로 생각한다.

대한제과협회에 등록돼 있는 약 1만5000여 곳의 빵집 중 우유, 계란, 버터를 쓰지 않는 빵집이 단 한 곳도 없음을 감안하면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 과감히 도전한 것이 이곳 빵집의 인기 요인이다. 지난달 29일 오후 3시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더브레드블루 베이커리를 기자가 방문했을 때도 20~30대 여성들로 가게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식당은 전국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빵집은 두말할 것도 없고요. 비건들이나 알러지, 아토피로 고생하시는 분들은 습관적으로 식재료와 음식 성분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곳에서 판매하는 제품에는 우유, 계란, 버터가 들어가지 않으니 마음껏 고르세요'라고 하면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몰라요. 그래서 단골고객들이 특히 많습니다."

비건들을 위한 빵집을 열기까지 어려움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신 총괄이사는 지인들과 함께 6년 전 홍대 인근에 '베지홀릭(Vegetable+Holic)'이라는 베이커리를 열었지만 '시장성'을 이유로 가게를 닫아야 했던 이력이 있다. 베지홀릭이 현재 더브레드블루의 전신이라면 전신인 셈이다. 이미 그때부터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빵은 존재했다. 그때와 지금 다른 게 무엇일까.
서울 홍익대학교 인근에 있는 비건(Vegan) 빵집 '더브레드블루'. 이곳에서는 빵을 만들 때 우유, 계란, 버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 사진= 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서울 홍익대학교 인근에 있는 비건(Vegan) 빵집 '더브레드블루'. 이곳에서는 빵을 만들 때 우유, 계란, 버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 사진= 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우유, 계란, 버터를 사용하지 않고 맛있는 빵을 만들어내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보통의 제빵사들은 빵 만들기 시작과 동시에 우유, 계란부터 가져다 놓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이는 일반적입니다. 아무리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빵이라고 하더라도 맛이 없으면 고객들이 찾지 않아요. 국내에서 채식주의자들이 늘어나는 추세와 함께 빵의 맛도 같이 개선돼야 하는 현실적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전국에 채식을 전문으로 하는 빵집이 없기 때문에 이곳 베이커리에서 제빵을 총괄하는 25년 경력의 셰프가 모든 레시피를 직접 만든다. 이는 공부를 해야하는데 참고서적이 없는 것과 같은 셈이다. 동물성 재료의 대체재를 찾고 또 이를 기존의 빵 레시피와 어우러지게 해야 하기 때문에 제품 한 가지를 내놓는 데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든다.

"머랭(계란 흰자에 설탕을 섞은 것)을 쓰면 간편하게 해결될 빵이나 케익들도 한참을 고민해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정작 드시는 분들은 기존 머랭이 들어간 제품과 맛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해요. 다른 식물성 재료로 머랭 맛을 내기 때문입니다. 채식이 보통 소명(召命)이라지만 그래도 맛있는 빵을 찾는 건 인간의 본능 아니겠습니까."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자가 신 총괄이사를 인터뷰하는 동안 이곳 베이커리를 찾은 20대 한 여성 고객은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빵이라고 해서 특별한 맛이 나는 건 아닌 것 같다"라고 친구에게 말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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