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스피스가 11일(한국시간)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현대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 대회 4라운드 2번홀에서 버디 퍼팅을 성공한 뒤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팬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조던 스피스가 11일(한국시간)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현대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 대회 4라운드 2번홀에서 버디 퍼팅을 성공한 뒤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팬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한 해에 메이저 대회 2개를 제패한 선수가 그 다음해에 잘하긴 힘들다. 엄청나게 높아진 관심과 기대에서 오는 부담감을 떨쳐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세계랭킹 3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라이벌’인 세계랭킹 1위 조던 스피스(미국)의 2016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년 연속 잘하려면 멘탈이 강해야 한다는 ‘조언’을 에둘러 한 것이다.

동료에 대한 걱정이기도 했다. 그 역시 2014년 브리티시오픈과 PGA챔피언십에서 메이저 2승을 챙기며 세계랭킹 1위에 올랐으나 이듬해 발목을 다쳐 메이저 무승에 그쳤기 때문이다.

◆‘新황제는 1명뿐’…8타 차 압승

그 걱정은 기우가 됐다. 스피스는 보란 듯이 2016년 첫 대회를 우승으로 장식하며 세계랭킹 1위를 굳건히 다졌다. 오히려 ‘넘사벽(넘어서기 어려운 사차원의 벽)’을 쌓아갈 기세다.

스피스는 11일(한국시간) 미국 하와이의 카팔루아 플랜테이션코스(파73·7411야드)에서 끝난 현대토너먼트오브챔피언스(총상금 590만달러)에서 30언더파를 쳐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통산 7승째. 2위 패트릭 리드(미국)를 8타 차로 따돌린 압승이다.

30언더파 우승은 PGA투어 사상 두 번째 최다 언더파 기록이다. 종전 기록은 2003년 이번 대회의 전신인 메르세데스챔피언십에서 어니 엘스(남아공)가 기록한 31언더파였다.

이번 대회는 장타자에 유리하다는 평이 많았다. 내리막과 뒷바람이 많아 파4에서는 1온, 파5에서는 2온을 시도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더스틴 존슨(미국) 버바 왓슨(미국) 브룩스 켑카(미국) 같은 ‘300야드’ 장타자의 우승이 점쳐진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 조건을 가장 잘 활용한 선수는 스피스였다. 드라이버 비거리가 중위권 수준인 그는 나흘 내내 드라이빙 아이언(3번 아이언)과 드라이버를 번갈아 꺼내들어 짧게는 220야드, 길게는 395야드의 티샷을 자유자재로 날렸다. 파5에서는 그린을 직접 노렸던 드라이빙 아이언 세컨드 샷 덕을 톡톡히 봤다. 30언더파 가운데 절반이 넘는 16타를 파5에서 줄였다. 드라이빙 아이언은 이번 대회에 앞서 그가 스크린골프로 대회 코스를 미리 돌아보며 집중 연마한 비밀병기였다.

◆퍼팅 쏙쏙 “황제 퍼팅 봤지?”

발군의 퍼팅 실력은 3번 아이언과 함께 그를 ‘왕중왕’으로 올려놓은 두 번째 수훈갑이다. 그린에 공을 올려놓았을 때의 홀당 평균 퍼팅 수가 1.617로 이번 대회에 출전한 지난 시즌 ‘챔프’ 32명 중 1위였다. 순수하게 퍼팅으로만 타수를 줄인 ‘스트로크 게인드 퍼팅(SGP)’이 7.54개로 역시 전체 1위였다. 아이언샷이 홀컵에 잘 붙었거나, 웨지샷 어프로치가 좋아 어부지리로 성공시킨 퍼팅을 제외한 게 SGP다.

스피스가 ‘차원이 다른’ 게임을 하자 다른 선수들은 순위 지키기에 급급했다. 첫날 단독 선두였던 패트릭 리드는 마지막날 4타를 더 줄였지만 합계 22언더파로 단독 2위를 확보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세계랭킹 1위 탈환에 나선 제이슨 데이(호주)도 마지막날 8언더파를 몰아치는 기염을 토했지만 3라운드까지 벌어졌던 17타 차를 뒤집진 못했다.

골프채널 등 미국 골프전문 매체는 스피스의 경기에 대해 일제히 “경쟁자를 의식하지 않은 듯, 그는 자신만의 게임을 했다”며 “선두로 나섰을 때 승률 95%를 보였던 타이거 우즈의 전성기를 떠올리게 했다”고 평가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