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중동 항공사 불공정 보조금에 대응해야
최근 글로벌 항공시장이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은 중동지역 항공사들의 무차별적인 시장공략 탓에 몸살을 앓고 있다. 올초 미국 항공업계는 중동국가들과 체결돼 있는 항공협정의 재협상을 정부에 요청했다. 프랑스, 독일을 비롯한 유럽연합(EU) 항공사들도 중동국가와의 항공협정을 수정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5월 네덜란드 정부는 불공정 경쟁을 이유로 자국 공항에 중동 항공사가 취항하는 것을 제한했다.

현재 아랍에미리트(UAE)와 카타르 항공사가 주도하는 중동지역은 에미레이트항공, 카타르항공, 에티하드항공 등 3사가 항공업계를 대표한다. 이들 항공사는 지리적 이점과 폭넓은 네트워크,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수요를 자국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을 계속해 오고 있다. 그런데 폭발적인 노선팽창으로 거둔 성과의 이면에 정부 보조금이 있다.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불공정 게임이 문제인 것이다.

지난 2월 미국 항공사들이 백악관에 제출한 보고서에 기술한 불공정 내용은 구체적이다. 최근 10년간 중동 항공사에 대한 불법보조금은 약 55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정부의 무상대여금과 대출보증, 공항세의 면제, 공항인프라의 무상제공 등 그 내용도 다양하다. 이들 중동 항공 3사는 차라리 정부기관이라고 해야 할 정도다. 일부에서는 항공자유화협정 철회까지 요구하고 있다. 중동 오일기업들과의 특수 관계를 활용해 항공유를 비정상적인 가격으로 조달한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된 항공업계의 위기감은 남의 일이 아니다. 국내 업계의 사정도 만만치 않다. 항공기 사고와 ‘땅콩회항 사건’ 등으로 항공업계가 숨죽이고 있는 동안 중동 항공사들은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인천공항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여객과 화물은 중동 항공사들에 상당량 흡수됐다. 중동 항공사들의 공격적 영업력은 정부 보조금 주머니에서 나온다. 국적항공사들이 서울~런던 왕복구간을 180만원에 파는 동안 중동 항공사들은 두바이 경유 노선을 120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그 결과, 작년 한 해 중동노선 탑승객의 86.7%는 중동을 거쳐 유럽, 아프리카, 남미 등 제3국으로 가는 환승객이었다. 국내에서 중동 항공 3사를 이용한 승객은 31만명인데 이들 항공사로 입국한 중동지역 여객은 1만2000명에 불과했다.

더구나 중동 항공사들이 국내 여객을 흡수해 80%를 웃도는 탑승률로 전 세계 노선에 연결하는 환승효과를 누리는 동안 우리 국적항공사는 60% 미만의 탑승률에 허덕였다. 이들의 공세는 화물부문에서도 심각하다. 최근까지 화물전용기를 정기적으로 취항시키면서 대기업의 유럽행 항공화물 수요를 흡수했다. 현재 중동 구간 전체 화물량의 92%가 중동 항공사 항공편에 실리고 있다.

전통적으로 항공산업은 국가의 주권을 상징한다. 외국 항공사들의 불공정 게임으로 국적항공사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시장을 잃는 것은 곧 주권의 손실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항공업계는 대형 항공사든 저비용 항공사든 빈약한 내수시장과 높은 원가구조로 인해 경쟁국 항공사들에 비해 수익구조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북적이는 공항의 주역으로 화려한 듯 보이지만 국적항공사들의 생존환경은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영업마진 3%를 밑도는 외화내빈의 수익구조다. 폭넓은 고용 창출효과, 관광 등 관련 산업에 대한 경제적 파급효과를 지닌 항공업계의 경쟁력 보강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동 항공사들의 불공정 게임을 주시하고,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대응을 벤치마킹하는 방식으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중동 비즈니스 확대를 위한 협상과정에서 운수권을 양보해 항공시장을 끼워파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허희영 < 한국항공대 교수·경영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