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철의 데스크 시각] 또 다른 '임성기 신화'를 기대한다
주식시장 반응은 싸늘했다. 쏟아지던 갈채는 사라졌고, 수군대는 소리가 가득했다. 이익마저 곤두박질치자 ‘위기론’이 퍼졌다. 작년 3분기 영업이익은 불과 12억원. 신약 개발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실적이 급속히 악화된 탓이었다.

최근 4년간 연구개발(R&D) 투자액은 4400억원. 작년엔 매출의 20%에 해당하는 1525억원을 투입했다. 제약사 1위(유한양행)의 매출 대비 R&D 비중이 5.7%인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조치였다. “되지도 않을 일을 공연히 벌이느라 건실한 회사만 망하게 생겼다”고 항의하는 투자자도 있었다. 한때 10만원을 넘던 주가는 작년 하반기엔 7만~8만원대로 떨어졌다.

매출 20% R&D에 쏟아부어

극적 반전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다국적 제약사 일라이릴리에 자가면역질환치료제 후보물질 ‘HM71224’를 기술수출했다. 계약금 5000만달러와 단계별 기술료 6억4000만달러 등 총 6억9000만달러. 국내 제약업계 사상 최대 규모다. ‘블록버스터 신약’ 개발 덕분에 주가도 거침없이 상승해 40만원을 넘보고 있다.

한미약품 얘기다. “다른 건 몰라도 영업력 하나만큼은 최강”이라던 이 회사가 ‘기술의 한미’로 변신한 데는 창업주 임성기 회장의 집념이 있었다. 한미약품은 2000년 의약분업의 대표적 수혜자였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10위권을 맴돌던 그저 그런 회사였다. 의원급 병원을 장악하며 2006년엔 제약업계 2위로 뛰어올랐다.

2010년, 임 회장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잘나갈 때 신약 개발에 ‘올인’하기로 했다. “영업으로 1등을 하더라도 복제약만 만들면 영원한 이류”라는 판단에서였다. 그해 한미약품은 13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R&D 비용으로만 442억원을 썼기 때문이다. 회사 창립 37년 만의 첫 영업적자였다. 임 회장은 “투자를 조정해 영업이익을 내는 게 우선”이라는 안팎의 거센 요구를 묵묵히 이겨냈다.

자신감 충만한 제약업계

‘가짜 백수오’ 파문으로 바이오업계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거품론’으로 자금줄이 막히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코스닥시장 침체가 장기화할 경우 취약한 신생 기업들은 줄줄이 도태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의 토대인 신생사들이 무너지면 국내 바이오산업은 변두리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특허 장벽’이 높아 태동기인 지금이 바이오 육성의 ‘골든타임’이어서다.

세계 바이오헬스 시장은 2024년 2934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자동차 등 한국 주력 수출 산업의 세계 시장을 합친 규모보다 크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예전과 달라진 업계의 ‘마음가짐’이다. “한미가 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한껏 고무된 자신감이다. 종근당, JW중외제약, 녹십자 등 10여개 업체가 신약 개발에 사운을 걸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복제약을 만들어 팔던 제약사가 다국적 제약사의 전유물이던 신약 개발에서도 두각을 나타낼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바이오산업과 코스닥시장을 이끌 최대의 동인(動因)은 실적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바이오산업의 도약을 위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뜻을 꺾지 않는 ‘제2·제3의 임성기 신화’ 출현을 기대해 본다.

김태철 중소기업부장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