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이공계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특수목적고인 과학고와 영재고의 최근 5년간 졸업생 약 8000명 중 550여명이 의대나 인문·사회계열학과에 진학한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학교들이 설립 목적에 어긋나게 진학지도를 해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영재고 의대 진학률 17%까지

'이공계 육성' 빗나간 과학·영재고, 17%가 醫大로 샜다
교육부는 6일 ‘최근 5년간 과학고·영재고 진학현황’ 자료를 통해 2010학년도부터 2014학년도까지 5년간 전국 19개 과학고·영재고 졸업생 중 이공계열로 진학한 학생 비율이 93.2%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는 과학고와 영재고 중 개교 3년 미만인 대구과학고, 대구일과학고, 부산과학고, 창원과학고, 경기과학고를 제외한 수치다.

이 기간 19개 과학고·영재고 졸업자 8023명 중 이공계열로 진학한 학생은 7428명으로 조사됐다. 의학계열 진학자가 287명(3.6%)이었고 인문·사회계열이나 기타 계열 진학자는 258명(3.2%)으로 나타났다.

과학고와 영재고 모두 이공계 진학 비중이 높았지만 전공과 연관된 진학률은 과학고가 조금 더 높았다. 5년간 17개 과학고 졸업자는 6762명이었고 이 중 이공계 진학자는 6351명(93.9%)이었다. 의학계열 진학자가 190명(2.8%), 기타 계열 진학자는 221명(3.3%)으로 집계됐다. 영재고 졸업생 1261명 중 이공계 진학자는 1127명(89.4%), 의대로 진학한 학생은 97명(7.7%)으로 과학고에 비해 의대 진학률이 높았다. 영재고에서 인문·사회계열 등 기타 계열로 진학한 학생은 37명(2.9%)이었다.

이공계열 진학률이 가장 높은 학교는 충북과학고(98.8%)였다. 이어 인천과학고(98.7%) 제주과학고(98.5%) 충남과학고(97.7%) 한국과학영재고(97.2%) 순으로 조사됐다.

반면 과학고와 영재고를 합해 의대 진학률이 가장 높은 학교는 서울과학고(17.0%)였다. 2013학년도에는 서울과학고 졸업생의 23.5%가 의대에 진학했다. 4명 중 1명이 의대에 갔다는 얘기다. 서울과학고에 이어 세종과학고(7.9%) 경북과학고(6.4%) 한성과학고(4.3%) 광주과학고(4.2%) 대전과학고(3.6%) 등의 의대 진학률이 과학고·영재고 전체 평균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문·사회 등 기타 계열 진학률까지 합한 수치로는 서울과학고(21.3%) 경기북과학고(12.5%) 세종과학고(10.8%) 경북과학고(8.4%) 전북과학고(7.2%) 순으로 높았다.

○정부 “재평가 때 불이익 주겠다”

졸업생이 의대 등 기타 계열에 진학한다는 점에서 과학고나 영재고가 설립 목적에 맞지 않게 진학지도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과학고와 영재고는 설립 당시부터 과학 및 이공계열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만들어진 학교다.

인재 육성을 위해 정부가 쏟아붓고 있는 재원도 적지 않다. 과학고의 경우 학교당 연간 8억~15억원의 정부 지원을 받고 있고 영재고는 연간 20억~30억원의 지원을 받는다. 영재고 학생들은 입학금과 수업료를 면제받는다. 하지만 막대한 정부 지원의 혜택을 보고나서 의대에 진학해버리면 그만인 셈이다.

이에 교육부는 과학고와 영재고에서 동일 계열에 진학하지 않는 경우 올해 특목고 재지정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도록 한 평가기준안을 최근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각 교육청은 상세 평가안을 만들어 오는 2월께 각 학교를 평가해 재지정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과학고와 영재고는 이공계 우수인재 육성을 위해 설립한 학교”라며 “진학률 등에서 나쁜 점수를 받으면 재지정 평가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당 학교들은 반발하고 있다. 한 영재고 관계자는 “학생들이 본인의 적성이나 흥미에 맞춰 이공계가 아닌 다른 학과로 진학하길 원하는 경우 학교에서 억지로 이공계 진학을 강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